추악한 글로벌 대형 은행들… 리보 이어 환율 조작 의혹

입력 2013-06-13 18:19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 금리 조작 스캔들에 이어 이번에는 외환시장 환율이 주요 대형 은행에 의해 10년 이상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영국 금융 당국이 조사에 나서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영국 금융보호청(FCA)은 외환시장의 환율을 관장하는 주요 대형 은행이 환율을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13일 보도했다. FCA는 미국 등 다른 금융 당국과도 정보 공유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은 1994년 도입돼 전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WM/로이터 환율 시스템에서 대형 은행의 일부 거래인이 환율이 정해지는 60초 사이에 매매 주문을 넣는 방법으로 환율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외환시장은 하루 최대 4조7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거래된다. 특히 환율은 세계 2대 투자지표인 FTSE(런던증권거래소 설립 세계주가지수)와 MSCI지수에도 반영되는 등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환율 조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금융계는 리보금리 조작에 이어 엄청난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외환시장 거래는 도이체방크(15.2%), 씨티그룹(14.9%), 바클레이스(10.2%), UBS(10.1%) 등 주요 4개 은행이 거래량의 5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좌지우지되고 있다. WM/로이터 환율 시스템은 전 세계 159개 통화에 대해 한 시간 단위로 발표된다. 달러와 파운드, 유로 등 주요 21개국 통화는 새로운 환율이 30분 단위로 고시된다.

의혹은 외환거래자가 환율 발표시간 기준으로 60초 전에 거래된 가격의 중간값이 새로운 환율로 적용된다는 점을 이용, 환율이 정해지는 60초 사이에 집중적인 주문을 해서 환율을 조작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런 환율 조작이 런던시간으로 오후 4시에 절정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시간대가 하루 거래분의 최대 10%가 이뤄지고 펀드매니저 역시 이때 주문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 금융 당국이 환율 조작과 관련, 내사에 착수했지만 정작 수사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런던 소재 법률회사인 베이커매킨지의 애런 스리바스타바는 “외환거래인을 시장조작 혐의로 기소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현행법상 환율을 금리와 달리 금융상품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환시장 거래에 정통한 한 트레이더는 블룸버그 통신에 “환율 조작이 10년 이상 지속돼 왔다”며 “외환시장이 가장 규제가 적은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