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남호철] 1인 가구 시대
입력 2013-06-13 17:44 수정 2013-06-13 17:45
“범죄 등에 취약…사회안전망 확충은 물론 가족 간, 이웃 간 소통도 중요”
과거 우리의 전통적인 가정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까지 함께 모여 살던 대가족이었다. 이웃간에도 옆집 부엌의 숟가락이 몇 개라는 것을 알 정도로 서로 소통하고 지냈다. 이렇게 더불어 사는 사회에는 고독이나 범죄가 발붙일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대가족은 소가족으로 바뀌고 나아가 핵가족시대로 쪼개졌다. 최근에는 혼인 감소, 이혼, 저출산, 고령화, 늦은 결혼 등으로 나홀로 사는 ‘1인 가구’마저 급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12일 발표한 ‘1인 가구 증가가 소비지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0년만 해도 41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3.9%에 그쳤으나 2020년 29.6%(588만 가구)에 이어 2030년 32.7%(709만 가구)로 높아져 3가구 중 1가구 꼴로 늘어날 전망이다. 가구원 수별에서는 2인 가구(33.0%)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이다. 반면 3∼4인 가구 비중은 2010년 43.8%에서 2030년 31.4%로 낮아지며 1인 가구를 밑돌아 역전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추세에 맞춰 최근 ‘솔로 이코노미’(1인 가구 경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부상하는 1인 가구의 4대 소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연간 소비지출은 50조원이었다. 1인당 소비지출액에서 2인 이상 가구를 앞질렀다. 그 규모가 갈수록 커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인용 제품 및 서비스가 다양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중소형 아파트의 평당 매매가격이 대형 아파트를 앞지른 경우도 있고, 식품업계에서는 소포장과 편이성, 고품질 위주의 전략으로 1인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원룸, 소포장·소용량 식품 및 가전제품 증가는 물론 레스토랑 등에서 1인용 테이블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 산업도 다양해졌다. 특히 보안과 안전을 결합한 가정용 특화 방범서비스는 물론 세탁·청소 대행, 짐 옮기기, 쇼핑 대행 등 생활지원 서비스업체가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편의점에서 즉석밥·면, 죽 등 가정간편식 매출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2006년 3조원이던 렌털 시장규모가 2012년 10조원으로 늘어난 것도 ‘나홀로 가구’ 확산과 무관치 않다. 금융회사들은 요즘 1인 가구를 겨냥한 맞춤형 금융서비스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1인 가구라도 혼자 살게 된 까닭은 다양하다. 노인들의 경우 배우자의 사망과 황혼이혼인 경우가 가장 많으며 결혼한 자식 눈치 보기 싫어 따로 사는 노인도 적지 않다. 20, 30대 여성 1인 가구는 결혼하라는 부모의 성화가 싫어 독립한 비혼(非婚)이 많다. 부모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삶의 형태는 ‘독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1인 가구가 늘면서 이들을 노리는 범죄 등 사회적 문제도 급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성 1인 가구’를 노리고 성폭행을 일삼는 ‘발바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홀로 여성이 많이 사는 원룸촌이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전체 성범죄 가운데 20∼30%가량이 1인 여성 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인 것으로 추산할 정도다. 서울에 사는 1인 가구 여성 10명 중 1명은 범죄 피해를 본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나 이들의 고독사도 잇따르고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들의 안전을 챙기기 위해 여성 단독 가구 지킴이, 노인 응급 케어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구석구석 모두를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 정책에만 매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1인 가구 시대에 걸맞게 지역별 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사회안전망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개별적으로는 따로 사는 가족간, 또는 가까운 이웃 간에 서로 소통하고 지내는 것도 1인 가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일 듯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