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사과의 기술
입력 2013-06-13 17:36
“초밥집의 수준은 계란말이로 알아볼 수 있다.” 예전에 일본의 한 요리연구가가 방송에서 한 말이다. 초밥집에 계란말이를 먹으러 가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요리 아닌 요리. 그러나 화력과 분량, 시간을 조율하는 요리사의 내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기본 중에 기본인 요리. 그래서 계란말이 초밥이 맛있는 집은 요리사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생기고 그만큼의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였을까. 한 케이블 방송사의 요리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계란말이를 과제로 내놓았다. 예쁜 노란색으로 정갈하게 말아진 통통한 계란말이. 태우지 않고 속까지 고루 익히되 너무 익혀 단단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나이테처럼 빈틈없이 곱게 잘 말려 있는 계란말이. 10여명의 도전자들은 쓰디쓴 심사평을 몇 번씩 참아가며 합격될 때까지 계란말이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눈물로 계란을 마는 도전자들을 보고 있자니 계란말이에 숨겨진 기술이 새삼스레 대단해 보였다.
이렇게 숨은 기술이 요리에만 있을까. 요사이 정계와 재계, 연예·스포츠계까지 ‘진정한 사과’의 과제를 통과하지 못해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자처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한 듯하다. 사과의 변이 길어도 문제고 짧아도 문제다. 여론의 뭇매를 맞다보면 억울함에 자기변명의 토를 달기 일쑤다.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나서야 항복하고 ‘진즉에 그럴 것이지’ 하는 용서의 합격통지를 받는다.
이는 비단 신문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들만의 모습은 아닐 터. 요즘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을 보기가 참 힘들다. 인간관계의 기본 중에 기본이건만 좀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별일 아닌 것 같아서, 쑥스러워서, 자존심이 상해서 ‘진즉에’ 했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골 깊은 상처를 만든다. 잘못을 알았다면 잘못한 만큼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제때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면 될 일. 이 쉬운 일이 번지수 틀린 자존심의 발현과 모자란 변명들로 마음을 잃고 헤매다 보니 점점 어려워진다.
처음부터 완벽한 계란말이를 만드는 요리사는 없다. 뜨거운 팬과 씨름하면서 불의 세기와 재료의 양, 조리 시간까지 모든 것의 완벽한 합을 몸으로 익혀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진정한 사과 또한 그렇지 않을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완벽한 합을 이루어 상대를 만족시키는 사과의 기술. 지금 우리에겐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