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형식과 내용

입력 2013-06-13 17:46

최근 외신에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철도회사 남성 기관사들이 단체로 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사진이 올라와 화제였다. 남자 직원들이 반바지를 못 입게 하는 복무규정에 반발해 남녀차별 금지 규정을 내세워 여성에게 허용된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도 여름철엔 간편복장(쿨비즈룩)이 대세다. 이렇듯 사회 전체가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쪽으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형식적’, ‘형식주의’ 등의 표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형식’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형식’과 ‘내용’은 대립적으로 보이나 이 둘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고 발전하는 관계다.

다만 종교에서는 믿음과 관련해 형식논리를 경계하는 가르침이 적지 않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체벌해야 한다는 유대교 전통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며 본질, 즉 인간에 대한 용서를 환기시킨다. 불가에서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내세워 말하지 않더라도 웃음으로 의미를 소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내용을 중시한다.

이는 극단적인 형식 우월·만능주의를 경계하자는 것이지 형식 그 자체를 폐기하자는 뜻은 아닐 터다. 오히려 형식은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도 법과 제도적 장치의 형식을 빼면 한 치도 전진할 수 없다. 장례식에 꽃분홍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듯 결혼식에 상복은 금기 코드가 아닌가.

무산된 남북회담과 관련해서도 형식과 내용이 거론된다. 당초 남한은 장관급회담을 요청했으나 북한이 당국회담을 주장함에 따라 그에 걸맞게 차관을 수석대표로 정했다. 이에 북한은 북측 수석대표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이라고 우기고 급수가 안 맞는다며 회담 자체를 보류하고 말았다.

‘격·급이 안 맞다’는 형식의 논리다. 이에 대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개하면서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축했다. 과거 남북회담에서 북한은 의도적으로 우리 쪽보다 급이 낮은 인사를 종종 수석대표로 내세워 왔지만 앞으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 또한 형식 중시다.

일각에서는 경색국면에선 남북대화 자체가 중요한데 지나치게 형식만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사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한쪽만 본 것이다. 형식과 내용은 함께 보완하고 발전하는 상호규정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형식과 내용, 어찌 풀어야 될지 참 답답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