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10) 열 아이 가정교육법?… 주님 안에서 자유를 줬죠
입력 2013-06-13 17:28
집에 온 첫째 명곤이가 밖에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투덜거린다. 아마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처음 와 본 사람들의 느낌은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집안이 어지럽다’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가 많다’는 말을 하곤 한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
어차피 우리 집은 애들이 많아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를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아이들이 주는 기쁨 또한 많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좋게 말해서 자유지 솔직하게 말하면 방임이라고 한다. 또 이렇게 크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순 있겠지만 조직사회에 어울리기 어려울 거라는 등 여러 부작용을 우려한다. 주변 이들의 우려 때문에 고민하던 나와 아들이 서로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에게 무한한 자유를 줬니?” “글쎄요. 제가 어떤 면에서 방임돼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는데.” 둘 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헤아려 보지만 오리무중이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물가에 있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여 걱정이 되는 것 같다. 나 혼자 살기에도 만만치 않은 인생인데 자꾸 애들만 늘리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위험천만하겠는가. 앞길 창창한 첫째라도 앞으로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누군가 넌지시 조언을 해준 모양이다. 다들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큰 용기를 내 해준 말 일거라 생각한다.
다른 가정과 우선순위가 달라서 그렇지 우리 가족도 규칙은 있다. 무조건적인 방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는 고아를 돌보는 것이라 판단했고, 그 결과 남들이 품기 힘든 아이에게 부모가 돼 줬을 뿐이다.
이러한 부모 때문인지 우리 자녀들도 어릴 때부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숙고해 왔다. 첫째 명곤이는 인생에 대해 청소년기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입양된 여러 동생들의 삶을 보며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만이 소망이라 말해왔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 속에 선한 건 없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픈 과거가 있어도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럼에도 남들이 걱정하는 걸 보면 나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의 염려처럼 우리 집에 방임의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 자유와 방임 이 두 가지가 섞여있어 분별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녀들이 자라면서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가길 원한다. 부모의 의사가 아니라 본인 의사가 더 많이 인생에 반영되길 원한다. 내가 볼 때 좋은 것임에도 아이가 이를 따르지 않아도 나는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이럴 땐 그대로 지켜봐주는 일이 선택을 종용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 스스로 결정하길 원한다. 우리가 정한 이 규칙을 종종 무시하고 아이들을 내 말에 절대 순종케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내 맘대로 아이들에게 보기 좋은 걸 쥐어주면 서로 갈등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돈도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이러한 욕구를 힘껏 누른다. 단지 나는 잠시 아이들 곁에 있을 뿐이다. 내가 없어도 아이들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자유도 방임도 아닌 기도함으로 이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리=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