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죽음·섹스·은둔… 그 내밀한 공간
입력 2013-06-13 17:12
방의 역사/미셸 페로/글항아리
방.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역사 속 중요한 사건의 배경으로 언급된 적은 더러 있지만 아예 방을 주인공으로 삼은 책은 처음이다. 저자는 개인의 사적 영역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고 들어온 책, ‘사생활의 역사’의 총편집인이자 프랑스 역사학자. 출산 죽음 투병 은둔 독서 사색 사랑 섹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가장 내밀한 행위가 이뤄진 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됐는지를 서술한다.
‘방의 역사’라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침실의 역사’에 가깝다. 침실을 표현하는 가장 오랜 단어 ‘잠자는 방(chambre a coucher)’이 18세기 중엽에서야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로 침실이 정착된 건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일이었다.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절까지, 귀족과 절대 권력을 지닌 왕에게도 독자적인 공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인간이 생애의 3분의 1을 보내는 침실의 확보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방을 통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인 ‘복도’는 17세기 영국의 대저택에서 등장했다. 복도의 등장을 통해 영국 엘리트층에서 개인주의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가정의 75%는 방 하나를 같이 썼다. 19세기 중엽, 부르주아 계층은 침대를 갖춘 별도의 침실을 누렸지만 가난한 농민과 도시 노동계층은 20세기까지도 공동생활을 했다. 부부만의 잠자리가 가능해진 것은 위생문제 덕분이었다. 전문가들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침실의 분리를 강조했던 것. 특히 쇠침대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각진 모퉁이와 금속 침대판, 최소한의 설비 덕분에 가볍고 조립 가능하고 값싸고 이동하기 쉽고 잠자리에 적당한 쇠침대가 잠자리의 민주화를 실현했다.” 근대적 결혼관도 한몫했다. 결혼과 사랑이 일치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더 나은 성생활을 열망하게 되면서 내밀한 침실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한 풍경이지만 침실에서의 독서와 글쓰기를 가능케 한 건 ‘램프의 등장’이었다. 전기 공급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침실에 전기 공급은 과분한 일이었다. 그래서 “침대에서의 독서는 몰상식할 정도로 사치스런 일”로 치부됐다. 머리 맡 램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밤중의 독서와 이른바 머리맡 책들의 시대도 시작됐다.
방은 주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남자들이 서재, 흡연실 등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던 것과 달리 여성들은 침실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찾았다. “침실은 특히 여자들의 공간이자 성역일 것이다. 종교, 가족질서, 도덕, 품위, 정숙함 등 모든 것이 여자들을 침실에 붙들어 놓는데 기여했다.… 문을 닫는 것은 그녀들의 자유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렇듯 달라진 방의 모습을 통해 서양의 근대를 보여준다. 방이 워낙 개인적인 공간이다 보니 사료로 쓸만한 증거는 많지 않았다. 방주인이 숨진 뒤 기록된 유산 목록과 이따금 발생한 범죄 현장에 대한 조사 보고서, 건축가의 평면도, 장식 미술 개론서, 실내 장식에 관한 잡지, 개인의 편지와 일기, 에밀 졸라와 모파상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책 속 방의 묘사까지 다양한 문헌을 동원했다. 유명 작가의 방,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주목 받은 호텔 방, 왕의 방과 노동자의 방, 아픈 사람과 갇힌 사람의 방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는 원작에는 없던 그림과 사진 126점을 수록했다. 저자가 언급하거나 연관성 있는 그림을 고르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각주만 80여쪽, 전체 751쪽의 두꺼운 책이라 서양사에 관심 없는 이들은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서양사에 흥미가 있다면 그림과 함께 유럽의 방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다. 보통의 미시사 책들이 그렇듯, 어떤 메시지를 찾기보다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대상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다 읽고 나면 내 ‘침실’이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영림·이은주 옮김.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