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질로 봉쇄된 도시에서의 28일간 이야기… 신작 장편 ‘28’ 펴낸 정유정 작가
입력 2013-06-13 17:33
‘7년의 밤’(2011)으로 30만부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한 작가 정유정(47·사진)이 2년여 만에 신작 장편 ‘28’(은행나무)을 들고 돌아왔다. ‘28’은 ‘빨간 눈’ 괴질로 봉쇄된 서울 외곽도시 화양에서 일어난 28일간의 이야기이다. ‘빨간 눈’ 괴질은 사람과 개가 서로에게 전염시키는 인수(人獸)공통전염병.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13일 정유정은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빨간 눈’ 괴질을 소설에 끌어들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몇 해 전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생매장 당했잖아요. 그걸 보면서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니라 반려동물인 개가 괴질에 전염됐을 때도 똑같이 생매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요. 제 대답은 ‘그렇다’였어요.”
가축 생매장 동영상을 본 그날 밤, 정유정은 잠들기를 포기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를 폈다고 한다. “초고를 끝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거의 전력질주였지요. 이런 속도로 진행하면 금세 소설을 끝낼 수 있을 것도 같았어요. 그런데 수정을 하면서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지요. 머릿속이 부옇게 흐려져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거예요. 심지어 책상 앞에 앉아 버티는 것마저 불가능해지더군요.”
그는 짐을 싸서 지리산의 한적한 장소로 들어가 일단 초고를 버렸다고 한다.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매일 산길을 걸으면서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스스로 자문했던 것이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였지요.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었어요. ‘모든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라는 말을 매일 매일 새기면서 글을 썼어요. 동물을 도구적인 관점에서 봐서는 안 된다, 생매장은 동물을 도구로 보는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인간도 똑같은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등등의 생각이 스치면서 글이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정유정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만나기 위해 재앙의 디스토피아를 설정하고 도시를 봉쇄시켰으며 그 도시에 인간과 개를 함께 수용시킨 것이다. 지난 1일부터 사전 예약판매가 시작된 ‘28’의 판매량은 일주일 만에 1500부를 돌파했고 작가에 대한 언론 인터뷰가 시작된 이번 주 초부터 탄력을 받더니 13일 현재 1만 권에 육박하고 있다. 소설이 서점에 깔리는 게 14일이니 이만하면 이미 절반의 성공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