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고뇌와 열정… 日 호소미 교수 비평집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
입력 2013-06-13 17:34
김시종(84·사진)은 재일(在日) 1세대를 대표하는 동포 시인이자 재일동포문학의 대부로 통한다. 1929년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 가족과 함께 어머니의 친정인 제주로 이주해 성장한 뒤 해방 뒤에는 제주 4·3항쟁에 가담, 주동자로 몰리면서 일본으로 밀항해 오사카에 정착했다.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어문학사)은 청년 시절, 김시종에게 시를 배운 호소미 가즈유키 일본 오사카 부립대 교수가 30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김시종 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개괄한 비평집이다.
1948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간 김시종은 1950년부터 일본어로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가 첫 시집 ‘진달래’(1955)을 냈을 때 문학 동인인 홍준표는 “유민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인의 감성”이라고 평했지만 오히려 김시종은 이렇게 맞받았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내 작품 발상의 모체는 나의 과거, 그에 얽힌 민족적 비애와 결부되어 있다. 내 손은 젖었다. 물에 젖은 자만이 가진 민감함으로 어떤 미소한 전류도 내 손을 그냥 지나치기를 거부한다. 가령 그것이 3볼트 정도의 전기작용이라 해도 내 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하여 떤다. 여기에 내 주요한 시의 발상의 장이 있다.”
그는 199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김 시인은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와 제주를 찾을 수 있었다. 일본어라는 ‘빌린 언어’로 시를 쓰지만 누구보다도 진한 한국의 민족혼을 담아내고 있는 그는 지난 시대가 낳은 영원한 언어적 유민인 것이다.
독일사상사를 전공한 호소미 교수는 김시종의 작품 세계를 독일의 문호 프란츠 카프카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체코어 화자가 다수를 점하는 프라하에서 독일어로 글을 쓴 카프카와 오사카에서 일본어로 글을 쓴 김시종은 물론 사정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 언어가 위화감이 없는 투명한 매체가 결코 아니라는 점은 공통된다. ‘독일어’는 빌린 언어라는 감각을 카프카는 평생 지울 수 없었다. (중략) 따라서 불가피하게 김시종의 작품은 단지 일본어 문학이라는 영역을 넘어 고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시종의 작품에는 적어도 유럽의 유대계 문학과 강렬하게 들어맞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시종의 문학은 일본의 전통적인 서정과는 대척점에 있는 새로운 서정을 탐색함으로써 탈식민지화를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었다. 동선희 옮김.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