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욕구에서 피어오른 문학적 기품과 통찰…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7권으로 완간

입력 2013-06-13 17:34


2년 전 작고한 박완서의 단편소설전집이 7권으로 완간됐다. 작품 발표연도에 따라 2006년부터 순차적으로 한 권씩 묶인 지 7년만이다. 최근 출간된 ‘그리움을 위하여’(문학동네)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한 작품 12편이 실린 박완서 문학의 종착지에 해당한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글쓰기가 증언의 욕구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등단작인 장편 ‘나목’(1970)이 화가 박수근에 대한 전기 형식의 글로 구상됐다가 결국 소설이라는 허구의 멍석을 깔아놓고 좀 더 자유로운 증언의 형식을 갖게 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발표한 12편의 수록작에서마저 노작가의 증언 형식이 한층 더 복잡하게 얽혀들면서 인간의 진실을 풍성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표제작 ‘그리움을 위하여’(2001)에는 ‘나’와 사촌 간이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나’의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며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사촌동생이 나온다. 젊어서는 자식들 챙기느라, 늙어서는 남편 병수발을 하는 그녀의 삶은 일견 불행을 껴입은 듯하다. 그런 그녀의 삶을 위로해주는 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다.

‘환갑이 지난 노인’이 하는 ‘사랑’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움을 위하여’의 그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남편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충분히 가슴이 설레며, 친구를 도와주러 갔던 섬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과 사랑에 빠질 만큼 여전히 젊다. 사랑은 그것을 찾는 사람이 누구든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박완서는 노년에 이르러 우리에게 설파했던 것이다.

‘대범한 밥상’(2006)의 ‘그’와 ‘그녀’는 사돈 간이다. 두 사람은 사고로 자식을 잃은 후 손자 손녀를 위해 한집에서 같이 산다. 남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그녀의 동창들은 사돈과 같이 사는 그녀를 추잡한 스캔들이라도 저지른 듯 빈정대고 조롱한다. 소문의 실체가 궁금해진 동창 중 한 명이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깊은 속내는 말이 필요 없는 거 아니니? 같이 자는 것보다 더 깊은 속내 말야. 영감님은 먼 산이나 마당가에 핀 일년초를 바라보거나 아이들이 재잘대고 노는 양을 바라보다가도 느닷없이 아, 소리를 삼키며 가슴을 움켜쥘 적이 있었지. 뭐가 생각나서 그러는지 나는 알지. 나도 그럴 적이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가슴을 저미기에 그렇게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대범한 밥상’에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2010)는 자전적 색채가 강한 박완서의 마지막 단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남편과 아들을 잇따라 잃은 박완서 개인의 슬픔이 문학으로 승화되는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식지 않고 날로 깊어지는 건 사랑이었다. 내 붙이의 죽음을 몇 백만 명의 희생자 중의 하나, 곧 몇 백만 분의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생명은 아무하고나 바꿔치기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우주였다는 게 보이고, 하나의 우주의 무의미한 소멸이 억울하고 통절했다. 그게 보인 게 사랑이 아니었을까.”(‘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에서)

박완서는 먼저 세상을 뜬 ‘내 붙이’의 죽음의 자리를 소설의 언어로 둘러본다. 자신에게 유일했던 한 존재의 소멸을 글로써 다시 만져 생성시키고 떠난 박완서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축복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