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회담’ 불가… 후속조치 없다
입력 2013-06-12 18:34 수정 2013-06-13 00:50
군사도발 위협을 딛고 대화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당국회담이 결국 무산되면서 남북의 시계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회담 재개의 희망을 안고 3개월 만에 재개통됐던 남북 간 판문점 연락 채널도 12일 다시 끊어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회담 무산 이후 추가적인 대화 제의를 하지 않기로 했고 북측 역시 당분간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화 시도→접촉→불발의 수순이 오히려 양측에 앙금만 남긴 꼴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는 어느 한쪽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다시 개성공단 잠정폐쇄 수준의 얼어붙은 상태로 역주행하는 것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결국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특별한 동기부여가 전제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12일 남북당국회담 무산의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수석대표 급(級) 조정을 위한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대해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라고 밝혔다. 류 장관은 남북회담본부에서 회의 주재에 앞서 “앞으로 북한도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려면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당국 간 회담에서 수차례 지적받아왔던 ‘불평등한 회담’은 새로운 남북관계 및 남북대화 정립 차원에서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류 장관은 특히 회담이 보류된 게 아니라 무산된 것이라고 표현해 이른 시일 내 회담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정부는 특히 현안에 대한 남북 실무급 관계자 간 협의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 11일 남북이 동시 교환했던 대표단 명단대로라면 회담을 다시 수용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회담 대표단 명단에 명시된 대로 우리 측은 김남식 통일부 차관,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이 나선다면 회담을 다시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당국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및 기타 현안을 풀자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우리는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원칙에 대해 지나치게 형식 논리에 치우쳐 있고 북한에 대한 운신의 폭도 스스로 좁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개성공단 완전폐쇄 등으로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런 비판론을 의식한 듯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이 나오라고 찍은 게 아니라 과거 남북대화 경험 등을 감안했을 때 통전부장이 장관 상대로서 걸맞은 것 아니냐는 예를 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전부장이 어려우면 그 정도 권한이 있는 사람,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위원이 있지 않나. 그 정도 레벨이 나오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도 회담 무산에 대한 정부 책임론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양비론도 강력하게 반박했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비판 여지를 조금이라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남북 간 판문점 연락채널은 지난 7일 재가동 이후 5일 만에 다시 끊겼다. 판문점의 우리 측 연락관이 오전 9시와 오후 4시 두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북측이 받지 않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