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출구전략 조짐에 잘나가던 이머징마켓 ‘비명’
입력 2013-06-12 18:29 수정 2013-06-12 22:21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중앙은행 돈 풀기’로 달아올랐던 신흥국 금융시장이 ‘자금 엑소더스’를 맞고 있다.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출구 찾기로 부풀어 오른 거품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동남아시아와 한국에 국한됐다면 이번 자금 이탈 현상은 복잡하고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더 우려스런 대목이다.
◇신흥국 자금 이탈경쟁=신흥국 탈출 러시의 계기는 지난 11일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가 결정적이었다.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장기금기 상승 억제를 위한 새로운 조치를 취하지 않고 보류했다. 당초 무제한 양적완화를 위해 장기국채를 포함한 장기금리 하락 목표와는 동떨어진 조치였다.
BNP 파리바의 패트릭 자크 전략가는 “시장이 일본은행에 실망했다”면서 “앞으로 몇 달은 유동성이 (이전보다) 덜할 것임을 시장이 다시 한번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경기회복 조짐에 따라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고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은 신흥국보다 안전한 미 국채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11일 14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것이 이를 반영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자금 엑소더스의 원인으로 선진국 중앙은행의 부양책이 주춤한 데다 신흥국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은 점이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필리핀의 경우 올해 4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감소했다. 7∼8%를 유지했던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5% 내외다.
◇신흥국 환율, 주가 기록적 폭락=신흥국에서 자금 엑소더스가 시작되면서 태국(-5%), 필리핀(-4.6%) 증시는 11일 2011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주가도 각각 3%와 3.5%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면서 달러 자금으로 돈을 인출, 달러 대비 환율도 요동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와 브라질 레알화 가치는 4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지난달 이후 7% 이상 빠진 인도 루피화 가치는 11일 이틀째 폭락세가 이어지면서 달러당 58.56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신흥국의 자금 이탈현상과 관련 펀드정보제공업체를 인용해 지난주 신흥시장 채권시장의 환매 규모가 2007년 중반 이후 가장 많았다면서 신흥시장 주식형 펀드 환매도 2011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도릭캐피털의 하워드 홍 대표는 “중앙은행발 잔치가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진국 중앙은행이 신흥시장 거품을 부풀린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전망은 여전히 좋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