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열기에 찌든 지하쪽방… “환기라도 됐으면”

입력 2013-06-12 18:23 수정 2013-06-12 22:42


일찍 찾아온 폭염에 서울 낮 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간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자양동 A아파트 지하 한쪽에 설치된 ‘미화원 대기실’ 문을 열어보니 퀴퀴한 냄새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캄캄한 대기실의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어지럽게 놓인 장판과 이불,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벽에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10㎡(3평)도 안 되는 공간에 음식과 각종 세제, 습기 등이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환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막 청소일을 마친 미화원 B씨(45·여)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는 “아이고∼ 오늘 신쭈가 별나네 별나”라고 했다. ‘신쭈’는 아파트 계단 끄트머리의 황동색 부분을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때가 쉽게 끼어 미화원들은 걸레로 그 틈새를 일일이 닦아내야 한다. 아침 9시 출근한 B씨는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신쭈 청소만 했다. 강한 표백제에 돌가루를 섞어 닦는데 냄새가 독해 청소가 끝나면 항상 두통에 시달린다. B씨는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했지만 “샤워할 데가 없어 화단 물청소용 호스로 간단히 세수만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개포동 C아파트 미화원 대기실도 비슷했다. 이 아파트는 9개 동에 대기실이 한 곳밖에 없었다. 미화원 9명이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대기실은 지하주차장 구석에 있었다. 노란 전기장판이 깔린 쪽방 형태로 벽 한쪽에는 옷가지와 훌라후프, 거울 등이 걸려 있었다. 장식장 위에 낡은 선풍기가 한 대 있었지만 꽉 막힌 공간이어서 더운 바람만 나왔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아 공기는 텁텁하고 눅눅했다. 주차장의 자동차 배기가스도 스멀스멀 들어왔다.

대형빌딩도 미화원 휴식공간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실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서울 청담동 8층짜리 빌딩의 미화원 3명은 대기실이 없어 지하 보일러실에서 웅크린 채 식사를 했다. 보일러실에는 각종 청소도구와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한 미화원은 “따로 쉴 공간이 없어 밥을 이런 데서 먹을 수밖에 없다”며 “잠깐씩 쉴 때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눕는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서울 강남·서초·광진구 일대에서 둘러본 아파트와 대형빌딩의 미화원 대기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하나같이 지하에 있었고 주차장이나 창고를 활용해 임시로 만든 탓에 환기장치나 샤워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재 위험도 높아 보였다. 지난달 29일 일원동의 한 아파트는 지하 미화원 대기실에서 불이나 내부가 모두 타버렸다. 전기장판에서 발화된 불이 위층으로 번졌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170㎜ 폭우가 쏟아졌던 2011년 7월 대치동 아파트에서는 지하 대기실에 있던 미화원이 감전으로 사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집계한 국내 빌딩·아파트 미화원은 약 40만명이다. 평균 56세로 81.6%가 여성이다. 하루 6시간 일하고 월 80만원 받는 이들에게 ‘안전한’ 쉼터는 거의 없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상목 정건희 전수민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