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지나친 박정희 마케팅

입력 2013-06-12 17:49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에 열린 청와대 초청모임에서 경북 문경의 모 인사가 박 대통령에게 “문경의 청운각을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청운각의 전나무는 잘 자라고 있느냐”고 되물어 머쓱해했다는 후문이다. 그 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하숙했던 청운각을 부각시킴으로써 박 대통령에게 대를 이은 인연을 강조할 목적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곳에 박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전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요즘 박 전 대통령과 실낱같은 인연만 있어도 이를 관광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이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다. 서울 중구청은 286억원의 예산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살았던 신당동 가옥 일대를 매입해 ‘박정희 기념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논란이 되자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대입장을 밝혔음에도 강행키로 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의 생가 등을 관광자원화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을 나무랄 수는 없다. 강원도 고성의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 그리고 전남 신안 하의도의 김대중 대통령 생가는 한 해 수만 명이 찾는 인기 관광지이다. 15일에는 목포 삼학도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개관해 관광객들을 맞는다. 그러나 지자체의 전·현직 대통령과 관련한 자원의 관광명소화 작업이 권력에 잘 보이려는 과잉충성이거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 성역화라는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

지난 봄 모 지자체에 취재를 갔다가 도심 한가운데 수십 미터 거리를 수놓은 새마을기를 보고 좀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 있던 공무원이 “세상이 바뀌자 사라졌던 새마을기가 부활했다”며 청와대를 비판해 가벼운 설전을 벌였다. “청와대에서 새마을기를 게양하라고 공문이라도 내려왔나요?” “아니요.” “그럼 누가 새마을기를 달았습니까?” “시청에서 달았겠지요.” “그럼 시장을 비난해야지 왜 청와대를 걸고넘어지나요?” “….”

강원도 철원군은 지난 3월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기념비’가 있는 갈말읍 군탄리의 군탄공원을 25년 만에 옛 이름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으로 복원해 논란이 되고 있다. 군탄공원은 박 전 대통령이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에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운한 군인이 되지 말자”는 유명한 말을 남긴 곳이다. 철원군은 민주화바람을 타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일자 1988년에 군탄공원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전역지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군자는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써서는 안 된다(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는 말이 있다. 아무리 신발 끈을 고쳐 매려고 머리를 숙였다고 하지만 그곳이 오이밭이라면 오이를 훔치는 행동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과잉충성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을 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철원군은 군탄공원 개명 이유로 관광명소화를 내걸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주화바람이 무서워 바꿀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 딸이 대통령이 됐다고 다시 원위치 한다는 말인가. 충북 옥천군의 ‘퍼스트레이디 역사문화 교육센터’ 건립계획, 경북 울릉군의 생뚱맞은 ‘박정희 기념관’ 조성사업 등 과잉충성 경쟁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바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지금은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관광자원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5년 후에도 지자체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조성한 기념물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