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정석은 외운 후 잊어라

입력 2013-06-12 17:15


지난 4월 중국 항저우에서 ‘2013 중국 갑조리그(1부)’가 시작됐다. 중국 리그는 1∼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국 리그와 달리 팀이 선수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의 상위 랭커 몇 명만이 중국팀과 직접 계약해 중국 리그에서 활약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의 상위 랭커가 중국 리그에서 활동한다.

이번 2013 중국 갑조리그에는 이세돌 박정환 최철한 조한승 박영훈 김지석 9단 등 상위 랭커 6위까지의 모든 기사는 물론 신예기사 나현 3단, 변상일 2단도 합류했다. 이처럼 한국 기사들이 중국 리그를 많이 찾는 이유는 파격적인 상금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이세돌은 한 판당 이기면 10만 위안(약 1800만원), 지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계약으로 한때 19연승을 기록한 바 있다. 박정환의 경우 승률 65% 달성 시에는 판당 8만 위안, 올해 처음 중국 리그에 참가한 박영훈은 승리 시 5만 위안, 질 경우에도 2만 위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됐다. 기보는 박정환과 셰허 9단의 갑조리그 대국.

<장면도> 평범한 포석으로 백1로 우하귀를 걸쳐온 뒤의 일반적인 정석 진행이다. 큰 무리 없이 정석 수순을 밟아가며 흑10으로 밀고 들어온 장면. 여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난다.

<참고도> 이런 장면이라면 백1로 받고 흑2로 들여다 볼 때 먼저 3, 5로 붙여 느는 것이 수순으로 7까지 예상할 수 있는 정석이다.

<실전도> 하지만 박정환은 평범을 거부했다. 백1로 슬쩍 붙여보고는 상대가 젖혀오자 3으로 끊어버렸다. 4의 단수에도 흔들림 없이 5, 7로 변신을 꾀한다. 정석대로 두지 않은 것은 제쳐 두고라도 ‘중앙 빵때림은 30집’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빵때림을 주는 것은 기피하는 게 상식인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한 다음 흑A로 젖혀 와서 B로 끊어갈 때 C로 우변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천지대패의 시한폭탄이 남아있는 자리. 아직 국면이 초반이라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틀에 박힌 정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발상이 재미있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