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현출]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유치 이후
입력 2013-06-12 18:02
지난 3월 제주에서 열린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설을 위한 대륙별 대표자 협의회에서 이 기구의 사무처를 한국에 두기로 합의했다. 이어 4월에는 인천시의회가 이 기구의 유치 동의안을 의결하고 송도 국제도시에 유치하기 위한 협의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한국민주주의(K-Democracy) 경험을 신생 민주주의 이행국에 전파하고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사무처 유치는 지난해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에 이은 쾌거다. 기구 유치의 의미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주지하다시피 국제기구는 국력의 상징이자 국제 영향력의 수단이며, 국제기구 소재 자체가 국가위상이나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국제회의 등의 개최에 수반되는 직접적 이익 외에도 후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지원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임으로써 국내기업의 신흥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K드라마, K팝과 같은 문화한류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G-20 정상회의나 국회의장회의를 통해 우리의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인 바도 있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사무국 유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 발돋움한 우리의 민주주의 경험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신생국 및 탈분쟁국 의회강화 사업에 우리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안에서는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짧은 기간 압축성장해 온 우리 경제와 같은 민주주의 경험이 많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압축 민주화 경험을 하다 보니 좋지 못한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면도 있지만 200년 이상 된 선진국 경험보다 우리의 경험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국가들이 많다. 그들에 정치·선거 관련 법제를 지원하고 선거 및 의회 관련 공무원에게 적절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의 공무원과 시민사회에 우리의 민주화 경험을 전파할 매뉴얼도 제작해 제공해야 한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사무국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잘 정리해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거 관련 국제기구들과의 협력과 역할분담을 잘 해야 한다. 민주주의 강화 사업에 핵심 역할을 해 온 국제의회연맹(IPU),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선거제도재단(IFES), 민주주의 및 선거지원을 위한 국제기구(IDEA) 등과의 협력과 공조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새로운 기구가 갖는 비교우위가 무엇인지 파악해 역할을 전문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국회나 행정부처, 그리고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협력이 절실하다. 관련기관의 협조를 얻는 일과 국민적 지지기반을 도출하기 위한 홍보활동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틀 속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도록 국내 주요 행위자들과 거버넌스 모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평화구축 활동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의회강화 사업과 선거민주화 사업을 연계해 향후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간 시민단체와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필요에 조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처럼 의미 있는 국제기구의 유치가 국제적으로 유용하고, 국내적으로도 국민적 합의와 참여 속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심해야 할 것이다.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