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남남북녀
입력 2013-06-12 17:54
우리 사회에는 남남북녀(南男北女)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남남북녀는 조선 말 사학자 이능화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 처음 등장한다. 북으로 갈수록 미녀가 많고, 남으로 갈수록 미남이 많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남남북녀를 소재로 한 영화도 여러 편이다. 신성일과 고은아가 주연을 맡은 박상호 감독의 멜로물 ‘남남북녀(1967년)’를 시작으로 ‘휘파람 공주’ ‘쉬리’ 등에 이어 드라마 ‘아이리스’도 남남북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탈북 여성과 남한 남성의 결혼이 늘면서 남남북녀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TV 한가위 프로도 선보였다.
스포츠 분야에는 남남북녀가 아니라 남녀북남(南女北男)인 사례가 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분단 최초의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세계 최강인 중국 여자팀을 격침시켰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여자대표팀 남측 코치였던 이유성씨는 “북한 김국철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여자는 현정화가 최고였다”고 회상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등장한 북한 미녀 응원단도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서 엄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녀 응원단의 해맑은 모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남북녀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 북한 수석대표로 나온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조명을 받았다. 극단으로 치닫던 북한이 남한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과시하려고 여성을 수석대표로 보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부장과 남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과의 회담이 남남북녀의 만남으로 그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던 2002년 5월 방북했을 때 김 부장이 현지에서 수행한 사실도 공개됐다. 북한이 박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김 부장을 낙점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그래서 남북 장관급 회담이 당국회담으로 격이 낮아졌는데도 대화 재개의 기대를 접지 않았다. 실로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물꼬가 막히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국장급, 아무리 높게 보아도 차관급을 통보하면서 남한 수석대표인 통일부 차관을 장관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국제관례로 보면 생떼나 다름없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담 대표단의 서울 파견을 보류하고 말았다. 생청도 이런 생청이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