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당신은 무엇에 짓눌려 있는가?
입력 2013-06-12 17:35
며칠 전 한 유명 걸그룹 멤버가 서울 강남에서 의류절도 혐의로 입건되었다. 일단 언론들은 그녀가 평소에도 상당한 스트레스성 우울증을 앓았다면서, 이번의 ‘우발적 범행’도 우울증이 한몫했던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우울증은 단순히 이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언론기사들과 각종 통계자료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우울증 대국(大國)’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매년 OECD 국가들 중에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학자금 압박 및 구직난에 찌든 청년층,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중년층, 외로움과 생활고로 고통 받는 노년층의 우울증은 통계조차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울증이 범사회적 현상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가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당사자의 기분만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건강도 악화시키고, 마치 전염병처럼 당사자의 가정과 일터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암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국내 경제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우울증과 자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약 12조원에 달하고, 작업손실 비용도 약 7조원에 달한다. 이토록 심각한 우리 사회의 우울증 문제에 대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질병’임을 강조하며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의 우울증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depression’ 즉 ‘무엇엔가 짓눌린 상태’이다. 그리고 그 짓누르는 주체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스트레스는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가장 큰 주범으로 지목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겪는 입시지옥 현상부터 노년층의 빈곤과 소외에 이르기까지 경제문제와 연관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 중에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가 없었다. 비록 최근의 경제난이 대부분 국민들에게는 견뎌내기 힘든 고통임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고통’이다. 며칠 전에도 서울의 유명 백화점들이 명품 할인행사를 시작하자마자 해당 행사장들은 구매희망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오죽했으면 ‘불황도 프라다는 입는다’라는 기사제목이 붙었을까. 그중에는 자칭 ‘정말 살기 힘든 사람들’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과도한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내려놓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감사해 보자. 우리의 밥상 위에 올려진 밥 한 그릇, 김치 한 조각부터 감사해 보자.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가?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일상의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기초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꿈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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