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9) “시각장애 여섯째 성일아, 너도 주님 선물이란다”
입력 2013-06-12 17:40
6개월 된 큰딸 하나에게 젖병을 물리고 눈빛으로 교감하던 어느 날, 나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과 어떤 방법으로 감정을 나누게 하실까’ 이 같은 생각은 시각장애인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남편의 반대 때문이었다. 시각장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던 남편은 대신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로 입양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2007년 지체장애가 있는 딸 내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우연이었을까. 2년 뒤 6번째로 입양한 아들 성일이에겐 시각장애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성일이를 집으로 데려올 땐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입양 가정 적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성일이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 아이를 잠시 집에 데려온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것을 권했다. 내 권유에 마음을 바꾼 성일이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책을 읽지 못할 만큼 시력이 안 좋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안과에 데려가자 의사는 약시와 색맹이 있지만 달리 손쓸 방법이 있는 건 아니라며 별다른 치료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성일이의 눈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책장을 얼굴 가까이 가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깜박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몇 년 전 잠시 돌봤던 맹아와 성일이의 행동이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성일이는 대낮엔 흰색이나 회색 차는 형체조차 보지 못했으며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깜짝 놀란 나는 대학병원 안과에서 시신경이 있는 머리 부분을 MRI로 찍었다. 선천적인 문제라 치료로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안 좋은 시력임에도 게임중독증세를 보이는 아이를 위해 신경정신과에도 들렀다. 전반적으로 건강하지만 감정발달이 제한적이라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심리검사 결과를 받았다.
성일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아는 하나님께서 손수 돌봐주시려는 걸까. 선천적으로 장애가 많은 성일이를 우리에게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오른쪽 손가락은 왜 선천적으로 두개밖에 없는지, 눈은 왜 원인 없이 보이지 않게 됐는지 말이다.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다 보낸 성일이가 중학교 1학년 때 뒤늦게 입양됐다 2년 뒤 우리 집으로 오게 한 그분의 뜻도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성일이를 생각하면 톨스토이의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오른다.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모 없는 쌍둥이를 기르는 여인이 남의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때, 여인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능력을 주시지 않은 것은 함께 모여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책 내용처럼 성일이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성일이가 우리에게 오기 전 처음 입양된 날은 2006년 12월 28일이다. 우리가 시각장애 아이를 입양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내리를 입양한 날과 정확히 일치했다. 선천적 시각장애가 있는지 모르고 입양가정과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는 2년 뒤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에 온 성일이는 이제 ‘잠시 머무는 보육원 아이’가 아닌 ‘한 가족’이 됐다. 병원에 다니느라 1년간 학업을 쉰 성일이는 이후 일반학교에서 서울맹학교 고등부로 옮겼다. 지금은 한국복지대학교 장애유아보육과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호기심에 철없이 한 어리석은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그저 놀라운 뿐이다.
정리=국민일보 쿠키뉴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