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를 따라 역사·문화를 만나다

입력 2013-06-12 17:52 수정 2013-06-12 22:19


‘동양의 베니스’ 중국 리장과 ‘중국의 스위스’ 다리

5596m의 설산(雪山)을 배경으로 800년 된 고성(古城)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양의 베니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양쯔강이 유유히 흐르고,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추억이 서린 곳. 소수민족의 문화가 살아 숨쉬고,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이 활약했던 역사의 현장.

중국 서남부 윈난성(雲南省)의 2400m 고지대에 위치한 리장(麗江)은 자연과 문화, 역사가 함께 하는 다면적 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을 원한다면 지금 리장으로 떠나자.

리장시 인구가 30만명인데 매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100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리장구청(麗江古城)은 3000여 채의 전통가옥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1996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콘크리트 건물들은 많이 무너졌지만 나무로 된 전통가옥들은 건재해 주목을 받았다.

지형이 큰 벼루(硯)를 닮았다고 하여 다옌진(大硯鎭)으로 불리는 고성에 들어서면 수백 년 된 돌길과 빽빽한 전통가옥의 숲, 설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와 마을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에 감탄한다. 고성 내 광장격인 시팡지에(四方街)를 중심으로 직경 1㎞ 안에 수많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800여년이나 된 볼록한 돌다리 다스차오(大石橋)는 리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수많은 사람과 말이 지나다녔을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성은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13세기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나시족은 지금도 상형문자인 동파(東巴)문자를 사용한다. 성내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 바로 나시족 최고 권력자 목씨의 관저인 무푸(木府)다. 중국 중앙정부는 13세기에 리장을 복속시켰지만 너무 먼 탓에 목씨 가문에게 통치를 위임했다. 리장구청엔 성벽이 없다. 고성 주위에 성벽을 쌓으면 목씨의 木자에 口가 둘러처져 ‘곤란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성벽을 쌓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성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사자산(獅子山) 정상에는 탑 모양의 정자, 완구러우(萬古樓)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리장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완구러우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성 전통가옥의 지붕은 ‘옥해(屋海)’ 그 자체다. 리장에서 10㎞ 떨어진 나시족의 전통마을인 바이사(白沙)의 한 사찰엔 500년 넘은 벽화(높이 3.67m·폭 4.98m)가 있어 눈길을 끈다. 도교와 불교, 티베트불교 등 종교 간 평화를 상징하는 내용의 이 벽화는 문화혁명과 지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고성 풍경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설산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시내 어디서나 바라다보이는 위룽쉐산(玉龍雪山)은 나시족의 성산이다. 북반부 최남단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위룽쉐산은 최고봉 산쯔더우(扇子?)를 비롯해 5000m가 넘는 봉우리가 13개, 4000m 이상 봉우리는 72개에 달한다. 일반인은 케이블카와 계단을 이용해 4680m까지 오를 수 있다.

특히 위룽쉐산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면 3100m 초원지대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야외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을 대표하는 장이머우 영화감독의 연출로 설산의 원주민 500명과 말 100필이 출연해 위룽쉐산과 차마고도, 소수민족을 주제로 거대한 스케일의 리장인상쇼를 펼치는 곳이다.

리장과 더불어 중국 서남부 문화의 발상지인 다리(大理)는 푸른 산이 병풍처럼 포개어진 창산(蒼山)과 바다같이 큰 자연호수 얼하이호(웜?를 끼고 있어 ‘중국의 스위스’로 불린다. 과거 남조국과 다리국의 수도이자 소수민족인 바이족(白族)의 고향으로 대리석이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산맥 자락인 창산은 가장 높은 중화봉(4200m)을 비롯해 19봉18계곡이 남북 45㎞에 걸쳐 있다. 간퉁사 케이블카로 창산에 오를 때 얼하이호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압권이다. 얼하이는 귀모양을 닮은 바다라는 뜻으로 크기가 남북 45㎞, 동서 9㎞에 달한다.

다리의 명물인 삼탑은 9세기 남조국시대에 세운 것으로 중앙탑은 4각 모양의 16층 69m, 지진으로 기울어진 좌우탑은 10층 42m이다. 창산을 배경으로 우뚝 선 삼탑이 취영지(聚影池)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리장구청과 함께 윈난성의 2대 고성 중 하나인 다리구청은 13세기 몽골 침입으로 초토화된 후 명대에 재건한 것이다. 8m 높이의 성벽 총 둘레는 3.5㎞. 마르코 폴로가 이곳의 번영한 모습을 보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양인(외국인)의 거리는 중국 쓰촨(四川)과 미얀마, 인도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요충지로서 다리가 누린 옛 영화를 잘 보여준다.

다리의 풍광을 상징하는 풍화설월(風花雪月)은 남부 하관의 바람, 북부 상관의 꽃, 서부 창산의 눈, 동부 얼하이 호수에 뜬 달을 가리킨다. 바이족 자치마을인 시저우(喜洲)에서는 소수민족의 전통 공연을 감상하면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담은 삼도차(三道茶)를 맛볼 수 있다.

리장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후타오샤(虎跳峽) 트레킹이다. 강폭이 가장 좁은 곳이 30m에 불과해 호랑이가 사냥꾼을 피해 뛰어 건너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후타오샤는 중국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는 세계적인 협곡이다. 해발 5396m의 하바쉐산(哈巴雪山)과 5596m의 위룽쉐산 사이로 양쯔강이 흐르는 20㎞ 길이의 협곡으로, 가장 깊은 구간의 수직 낙차가 3790m에 달해 아찔한 느낌마저 준다.

티베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리장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샹그릴라(香格里拉)가 제격이다. 옛 티베트 땅이었던 이곳엔 윈난성의 최고봉인 메이리설산(梅里雪山·6740m)이 있다.

리장(중국)=글·사진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