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급 안 맞는다” 애초부터 판 깨려한 듯
입력 2013-06-12 01:00
남북당국회담이 하루 전날 무산되는 초유의 상황을 놓고 북한이 애초부터 판을 깨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11일 우리 측에 북측 대표단 수석대표로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통보했다. 강 국장은 우리 정부가 예상했던 북한의 ‘상급 당국자’ 중 한 명이긴 했지만 정부가 차선으로 생각했던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보다는 급이 낮다. 정부는 당초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난색을 표하면서 김 부장 바로 아래 직위인 원 부부장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다. 때문에 강 국장을 내세운 게 김 부장을 무리하게 요구한 정부에 맞불식 통보를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부는 특히 북측이 당국회담의 수석대표 급을 문제 삼아 예정된 당국 대화까지 거부하는 것은 사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이 나름대로 고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6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직접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고 9~10일 실무접촉에서도 북측에 ‘남북 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를 우리 측 수석대표로 내보낸다는 시그널을 줬다.
하지만 기존 관행을 갑자기 바꾸기 어려운 북한 내부 특성상 김 부장을 전례 없이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지도부에서도 최고위급인 김 부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남북은 수석대표의 급 문제를 놓고 모처럼 마련된 ‘대화의 장’을 걷어찬 모양새여서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긴 어렵게 됐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정부가 장관급 수준의 회담을 제안해 놓고 차관급 수석대표를 내민 것 자체가 회담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북한이 받아들였을 수 있다”며 “급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김 부장을 요구하려면 우리 측도 그에 걸맞은 국가정보원장이나 외교안보수석을 수석대표로 내세웠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관계 정립과 국제적 스탠더드를 내세웠다면 시일을 충분히 두고 협의하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갑자기 관례를 깨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북한은 류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와야 회담에 응할 태세고, 급부터 균형을 맞추는 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여기는 정부도 꼼짝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분간 냉각기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