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신뢰프로세스 진정한 시험대

입력 2013-06-11 22:24 수정 2013-06-12 01:18

12일 열릴 예정이던 남북당국회담이 11일 오후 전격 무산되면서 순항하는 듯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암초에 걸린 형국이 됐다. 뚝심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청와대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국제적인 스탠더드(기준)’에 대표단 급(級)을 맞추는 문제를 상식적인 원칙으로 생각하면서 회담을 이틀 앞두고 이례적으로 강한 목소리를 냈지만 북한이 이를 무시했다는 게 청와대 판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대표단 파견 보류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직후 ‘굴종’ ‘굴욕’ 등의 격앙된 표현을 썼다.



그간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 수위까지 올라도 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추진 의사를 밝혔고, 결국 당국 간 대화라는 우리 쪽 입장을 관철시켰다. 북한이 우리 측 대화 제의에 응한 모양새로 지난 9일 실무접촉이 진행됐고 12일 남북당국회담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성과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외교·안보 분야는 출범 3개월을 갓 넘긴 박근혜정부가 가장 잘한 분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식(式) 대북압박’은 대화를 시작하는 데까지만 효력을 증명한 모양새가 됐다. 당장 회담 날짜를 하루 앞두고도 의제와 대표단 구성을 합의하지 못했던 당국회담은 결국 ‘누가 회담에 나오느냐’는 문제 하나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당분간 여론은 우리 정부를 옹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향후 이른 시일 내 남북당국회담이 재개되지 않고, 북한과 지루한 책임공방이 전개된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며 세찬 비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야권은 물론 강경한 대북기조를 촉구하는 여권 일각에서도 수정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지난 6일 북한이 당국 간 회담을 요청해 온 직후 “그동안 국민들께서 정부를 신뢰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반응했던 부분도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과 동시에 온갖 우려에도 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등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던 정부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박 대통령과 정부는 다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중심으로 원칙을 강조하면서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추진할 태세다. 다만 이제부터는 북한과의 ‘기 싸움’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이 불거질 가능성까지 신경써가며 국내외를 넘나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