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의제부터 시각차 뚜렷… 예고된 파행
입력 2013-06-11 22:17
회담 개최를 불과 24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11일 무산된 남북당국회담은 이미 양측의 실무접촉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9∼10일 진행된 실무접촉에서 양측은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회담 참여 외에도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개최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실무접촉 대표단들이 9일 오전 10시부터 10일 새벽까지 진통 속에 18시간 가까이 마라톤협상을 벌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국회담 의제를 둘러싼 핵심쟁점은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문제 등을 명시적으로 의제에 포함하느냐의 문제였다. 우리 측은 실무접촉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를 본회담에서 논의할 의제로 제시하면서 나머지 문제는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표현하자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당국회담의 의제를 일일이 열거해 제한하기보다는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개성공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6·15 및 7·4 발표일 공동 기념문제, 민간왕래와 접촉, 협력사업 추진문제’를 적시해야 한다고 맞섰다. 북한이 자신들이 제기한 모든 사안을 의제에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당국회담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이산가족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6·15 공동선언과 7·4 공동성명 기념문제 및 5·24조치 해제와 관련이 있는 민간 왕래와 접촉, 협력사업 추진문제를 중요하게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결국 이견을 못 좁힌 남북은 실무접촉 합의문 대신 채택한 발표문에서 회담 의제에 관한 항목을 각각 다르게 발표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따라서 남북 간의 이런 입장 차이는 당초 12∼13일 서울에서 열기로 했던 남북당국회담이 시작부터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회담 무산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실무접촉에서 의제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은 회담이 열린 뒤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북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남북 양측은 회담에 나설 수석대표급과 의제도 제대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회담을 열고 보자’는 식으로 나섰다는 따가운 시선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선 통일부가 6년 만에 개최되는 고위급 남북회담 계기를 맞아 결과물 도출에 집착하느라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