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사법처리 방향 결정, 꼬박 54일이 걸렸다
입력 2013-06-11 18:43 수정 2013-06-11 22:26
검찰이 수사 착수 54일 만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와 방향을 결정했다. 그러나 원 전 원장 신병처리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으로 적지 않은 상처가 남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결정을 미루면서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 4월 18일 국정원의 대선·정치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 1호 태스크포스(TF) 수사팀이었다. 공안부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이 총괄 지휘하고, 특수통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팀장을 맡았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탓에 수사팀 행보는 빨랐다. 수사 착수 10여일 만에 댓글 의혹 지휘라인에 있는 민모 심리정보국장, 이종명 국정원 3차장, 원 전 원장을 줄줄이 소환했고 국정원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말씀 원본과 댓글 활동 보고서 등을 확보했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주로 활동한 인터넷 사이트 15곳의 게시글을 전수조사하면서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도 파악했다. 검찰은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원 전 원장이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원 전 원장을 재소환하면서 사실상 수사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때 검찰 내부에서 이견이 감지됐다. 특수부 검사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활동에 대한 책임을 원 전 원장에게 포괄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공안 검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수사팀은 수차례 내부 토론을 거쳐 ‘선거법 적용, 영장청구’ 방침을 세우고 대검을 통해 법무부에 중간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 장관이 검찰에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사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수사팀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찰과 법무부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검찰이 둘로 갈라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사법처리 방침에 대한 결론이 늦어지면서 황 장관이 편법으로 수사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11일 황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까지 거론했다. 검찰은 “결론을 내기 위한 토론 과정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날 오후 2시까지 검찰은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입장 표명만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거센 정치적 후폭풍을 감지한 듯 오후 4시에 갑자기 결론을 공개했다. 채 총장은 검찰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직후 “갈등은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면서 향후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에도 오점을 남기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