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공조직 통한 선거개입’ 확인… 정치적 파장 클 듯

입력 2013-06-11 18:43 수정 2013-06-11 22:26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한 것은 국가 정보기관 수장이 법적으로 금지된 선거운동에 개입한 혐의를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수사 막판에 이르러 수사팀 내부, 검찰과 법무부 간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진통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선거법 위반죄 적용키로=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1항을 적용했다. 대부분의 선거법 조항은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지만 85조 1항 위반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더 중한 범죄로 친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 세력들이 사이버상에서 국정 폄훼활동을 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함’ 등을 주문했고, 이에 맞춰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야당 대선 후보들을 비판하는 댓글을 올리고 게시글 ‘찬반 표시’ 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종북세력 대응 명령이 결과적으로 야당 후보들의 당선을 막는 선거운동으로 일부 변질된 만큼 지휘계통의 ‘정점’인 원 전 원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명시적으로 선거개입을 지시한 물증이 없고, 선거운동 소지가 있는 댓글 수가 수십 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향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원 전 원장 변호인 측도 “국정원장 재직 시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지휘했고, 선거·정치개입을 금지시켰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지난 대선 당시 ‘공조직을 동원한 불법 선거운동’이 있었음을 수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말이 된다. 선거운동이라면 결국 현직 대통령을 이롭게 한 행위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은 여러 차례 난상 토론 끝에 ‘선거법 적용 기소’로 의견을 모았다. 사회적 논란이 컸던 사안인 만큼 국정원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죄를 묻는 것이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는 판단에서다. 정권에 따라 되풀이되는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선거개입 관행을 단절해야 한다는 수사팀의 공명심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구속영장 청구는 못해=검찰은 끝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시도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일(19일)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팀의 구속영장 청구 의견에 대해 법리적 문제를 들어 부정적 의견을 고수한 영향이 크다. 법무·검찰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구속 수사할 시간이 짧아 실익이 없는 시점까지 온 것이다.

황 장관이 단순히 ‘소신’ 때문에 결정을 유보해 왔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검찰 간부는 “합리적인 황 장관이 이렇게 버틴 데는 장관 의사만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공교롭게도 기소 결론은 황 장관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러 청와대에 다녀온 이후 정해졌다. 황 장관은 “장관이 결정을 하든, 안 하든 사건 처리는 결국 검찰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