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級’싸고 대립… 남북회담 무산
입력 2013-06-11 18:14 수정 2013-06-11 22:14
남북이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급(級)’을 놓고 대립하다 끝내 타협에 실패해 12일 예정됐던 회담이 무산됐다. 북한은 무산 책임을 우리 측에 돌리고 있고 청와대와 정부가 북측의 조치를 강력 비판하면서 당분간 회담 개최가 어려워지게 됐다. 남북 대화국면이 다시 꼬이게 됨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11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북측이 우리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삼으면서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며 회담이 무산됐음을 공식 발표했다.
남북은 수석대표로 각각 김남식 통일부 차관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선정해 5명의 대표단 명단을 이날 오후 1시쯤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주고받았다. 이후 북측은 우리 수석대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한동안 전화 협의가 진행됐지만 양측이 원안을 고수하며 수정 제의를 하지 않아 결국 회담 자체가 무산됐다.
김 대변인은 “북측은 우리가 수석대표를 통일부 장관에서 차관으로 교체한 것에 대해 ‘남북당국회담에 대한 우롱이고 실무접촉에 대한 왜곡으로, 엄중한 도발로 간주한다’고 주장했다”며 “곧바로 북측은 대표단 파견 보류 사실과 ‘무산 책임이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에 있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남북 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우리 측 당국자인 차관의 급을 문제삼아 예정된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북한이 강지영 국장을 내세우면서도 우리 측에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요구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외국과의 접촉·대화에선 국제 스탠더드에 맞추면서 남북당국회담에선 이를 따르지 않는다”며 “과거 해왔던 대로 상대에게 처음부터 존중 대신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당국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장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급에 맞지 않는 대화의 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남북이) 동등하게 대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정부 당국자도 “수석대표의 급을 맞추는 것은 형식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자 대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고 신뢰 형성의 기초”라고 말했다.
신창호 모규엽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