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3005번-반대 0번… STX 사외이사들, 기업 부실 치닫는 동안 “예스”만 했다
입력 2013-06-11 18:14
법정관리·자율협약 중인 STX그룹 5개 핵심 상장법인에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모든 이사회 의결 안건이 반대표 하나 없이 가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3005차례 찬성표가 던져지는 동안 반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경영진이 지나친 시황 낙관,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을 자초할 때 사외이사들은 비판·감시라는 본연의 책무를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STX그룹에는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출신 ‘낙하산’ 사외이사가 유독 많다. 이들이 견제장치보다는 대외로비 창구로 전락하면서 그룹의 위기상황이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TX STX팬오션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엔진 등 STX그룹 5개 상장법인의 이사회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61건의 의결 안건을 모두 가결시켰다. 이 기간에 5개 법인의 사외이사 32명은 총 3005차례 찬성 의견만 냈고, 반대 의견은 전혀 없었다. 불참자를 빼면 모든 안건이 사외이사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룹 내부거래, 생산 공장 신규 투자, 해외법인 설립, 해외법인 계열사 증자, 차입금 약정 등 모든 안건이 속전속결로 이사회를 통과했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팬오션의 이사회는 채권단이 부실 원인으로 지목한 장기용선 계약 체결을 아무런 제한 없이 가결했다. 건설사의 발목을 무수히 잡았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보 제공 안건에도 찬성표가 몰렸다.
그룹이 구조조정 위기를 맞을 때까지 ‘거수기’ 역할만 한 사외이사 중 상당수는 STX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출신이었다. 최근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김종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는 2011년부터 STX팬오션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임기가 연장됐지만 회사는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2009년부터 ㈜STX 사외이사를 맡았던 이성근 전 산은캐피탈 대표이사는 찬성표만 던지다 지난 3월 일신상 사유로 중도 퇴임했다. 이 자리는 인호 전 산업은행 이사가 물려받았다. 이 외에도 STX엔진에는 최동현 전 산업은행 검사부 검사역, STX조선해양에는 정경채 전 산업은행 부행장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활동 대가로 매년 수천만원을 받았다. STX는 지난해 사외이사에게 1인 평균 6300만원, STX조선해양은 6100만원, STX중공업은 4700만원을 각각 제공했다. STX팬오션의 경우 금융권에 천문학적인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안겼지만 사외이사에게는 1인당 평균 7352만2000원의 보수를 줬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사외이사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역할이 매우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산업은행 출신 사외이사가 많은 점에 대해서는 “재무적 곤경을 겪는 회사일수록 채권단 출신 인사를 영입해 지원을 더 받으려는 통로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