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당국회담 무산됐지만 불씨 살려 나가야
입력 2013-06-11 17:41 수정 2013-06-12 01:27
北, 남측 수석대표 級에 대한 억지 주장 거두고 대화에 나서길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12∼13 양일간 열릴 예정이던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회담이자,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의 복원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번 회담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컸던 점을 고려할 때 참으로 암울한 소식이다.
남측 수석대표의 급(級)에 대한 이견이 원인이다. 우리 정부는 남측에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내각 책임참사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장관급회담 관행이 비정상이라고 판단하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바로잡기로 했다. 북측의 내각 책임참사는 우리 정부의 국장급 정도에 해당되는 직위이기 때문에 남측에서 통일부 장관이 응대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따라서 북측이 당국회담 수석대표가 누구인지를 통보해오면 그에 걸맞은 인사를 내보낼 방침이었다. 올바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측은 반발했다. 내각 책임참사 대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보내겠다는 북측에 대해 우리 정부가 통일부 차관이 수석대표로 나갈 것이라고 통보하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북측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한 의견 조율 과정에서 남측에서 장관급 인사가 수석대표로 나오지 않으면 회담을 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결국 회담 자체가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남측은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를, 북측은 ‘상급 당국자’를 각각 수석대표로 한다는 게 실무접촉 합의사항이다. 누구를 수석대표로 지명할 것인지를 상대에 위임한 셈이다. 더욱이 ‘상급 당국자’로 조평통 국장급 인사를 정한 북측이 남측에서는 반드시 장관급 인사가 나와야 한다고 고집부린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면서 회담 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북측이 과연 당국회담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한다. 국제적인 외교관례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다.
북측이 당국회담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고 밝힌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추후 협의 결과에 따라 회담에 응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회담의 주도권을 쥐려는 기싸움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를 길들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 화해의 장(場)이 깨질 수도 있다. 대화가 무산되면 북한은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다. 고립이 심화되면서 3대 세습체제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북한은 조속한 시일 내에 당국간 회담에 나서는 게 옳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접촉에서 경직된 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장관급회담을 제의한 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수석대표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다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통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북접촉에서 원칙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원칙을 앞세우다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조차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