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시위사태 현직 총리·과거 대통령의 대결

입력 2013-06-10 18:57

“우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사랑해요. 그는 이슬람 제국을 현대적인 공화국으로 바꾸었어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우리가 그를 잊기 바라죠. 우린 아타튀르크 르네상스(문예 부흥)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무라트 바키르도벤·24세 대학생)

1923∼1938년 집권한 터키 초대 대통령이 살아 돌아온 걸까.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나무 아래에는 아타튀르크 전 대통령 사진을 껴안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광장 나뭇가지에, 차 가판대 위에, 심지어 에르도안 총리의 대형 현수막마저 아타튀르크의 사진이 감싸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보도했다.

9일(현지시간) 대규모 시위로 확산된 지 10일째를 맞고 있는 터키 전역에서 70여년 전 세속 민주주의를 도입한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 현재의 에르도안 총리와 싸우는 셈이다.

아타튀르크는 이슬람 전통에서 금기시됐던 여성 교육 실시, 이슬람력 폐지, 유럽 그레고리력 대체, 일부다처제 폐지, 여성 선거권 부여 등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터키 젊은이들은 오토만 제국으로 회귀하는 듯한 에르도안 총리의 이슬람 중시 정책에 대항해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을 저항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터키의 젊은 여성들도 시위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여배우 세비 알간(37)은 “우리는 에르도안이 원하듯 집에만 있는 여자들이 아니다”며 “우리는 토론하고, 술을 마시고 싶지만 에르도안과 그의 지지자들은 시위대를 ‘나쁜 무슬림’이라 여긴다”고 토로했다.

에르도안 총리가 실제 시도한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흔적 지우기도 시민들을 자극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아타튀르크의 날’인 5월 19일 행사를 없애며 “누구도 노출이 심한 스커트를 입은 소녀들이 활보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선 매년 소년·소녀들이 경기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관례였다. 2년 전에는 포르노 사이트를 차단하는가 하면 유튜브 사이트도 일시 차단했다.

에르도안 총리 또한 이날 “집권 정당을 존중하지 않는 세력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고 강경 대응해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