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팬오션 쇼크… 은행권 손실 5400억원 넘을 듯

입력 2013-06-10 18:44 수정 2013-06-10 14:30


국내 벌크선업계 1위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은행권이 ‘대손충당금 폭탄’을 떠안게 됐다. 적립해야 할 돈이 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2금융권 등을 합치면 STX팬오션에 대한 금융권 여신이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문제가 확대되면 금융권이 입을 손실은 더욱 불어난다. 대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이 반복되자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 금융당국은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은행권 위험노출액이 5000억원에 이르러=하이투자증권은 지난 7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팬오션의 은행권 익스포저(Exposure·위험노출액) 합계가 4981억원으로 집계됐다고 10일 밝혔다. 익스포저란 돈을 빌려준 기업에 신용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수 불능 위험에 빠지는 금융권의 각종 채권을 말한다. 은행권 익스포저는 KDB산업은행 2450억원, 우리은행 866억원, 농협 760억원, 하나은행 746억원, 신한금융투자 116억원, 대우증권 99억원 순이었다.

이들은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익스포저의 50%에 해당하는 약 2500억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관련 은행주들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하락을 거듭했다. 하이투자증권은 STX그룹 전체가 법정관리를 받으면 우리금융의 주가가 40% 넘게 빠질 수 있다고까지 예측했다.

그나마 드러난 익스포저는 은행권의 IR 담당자를 통해 확인된 보수적 숫자다. 금융권에서는 익스포저가 더욱 크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돈을 빌려준 은행이 말하는 숫자와 돈을 받은 기업이 이야기하는 숫자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은행권이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과 제2금융권의 몫을 합친 STX팬오션 여신 규모는 2조4000억원의 금융리스부채, 1조1000억원의 회사채를 제외하고도 약 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사실상 STX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 벌써 2개 계열사(STX건설·STX팬오션)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4개 계열사(STX조선해양·STX엔진·STX중공업·㈜STX)는 자율협약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말 개별재무제표 기준 주요 8개 계열사의 총 차입금은 11조원을 넘었다. 평균 부채비율(자본 대비 부채 비중)은 무려 363.1%다. 신용평가사들은 STX팬오션의 기업어음과 회사채 등급을 D등급으로 내려잡았다.

◇법정관리는 늘어나는데 회생은 쉽지 않아=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해운·조선업계에서는 법정관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회생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법정관리 기업 대부분은 결국 청산 절차를 밟거나 한계기업(경쟁력을 상실해 사실상 성장이 어려운 기업)으로 전락한다. 금융권이 최근 해운업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자금 대출을 자제하는 것도 회생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분위기 속에서 법정관리 신청은 급증세다. 올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벌써 108곳이다. 2010년 155건, 2011년 190건에서 지난해 268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웅진사태에서도 나타났듯 법정관리는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금융회사와 하청·거래업체에 진 빚을 당장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간편한 방법이지만 채권단과 투자자는 손실을 입는 구조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법무부와 함께 법정관리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금융위는 법정관리 신청 요건을 강화하고, 법정관리 신청 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회계법인과 공동 실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기업뿐 아니라 채권단도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