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김양건 고집 왜?… 책임있는 인물간 대좌로 ‘실질적 문제 해결’ 원해

입력 2013-06-10 18:38 수정 2013-06-10 22:18

남북은 10일 새벽까지 이어진 18시간의 마라톤 실무접촉에서 크게 두 가지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우리 측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남북당국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요구했고, 북측은 6·15 행사의 공동개최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자고 주장했다. 누가 무엇을 논의할지가 불명확해지면서 어정쩡한 발표문이 나왔고, 12∼13일로 예정된 회담도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왜 북측 수석대표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줄기차게 요구한 걸까. 북한은 2000∼2007년 21차례 열린 장관급 회담에 수석대표로 통전부장을 내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북측에 이례적인 요구임을 알면서 정부가 끝까지 고집한 셈이다.

우리 측 실무접촉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10일 브리핑에서 “남북 현안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과 북측 통전부장 간의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북측에 시종일관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발표문에서 ‘북측단장(수석대표)은 상급 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고 못 박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통전부장을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일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북한이 급이 낮은 인사를 단장으로 통보할 경우 우리 정부도 수석대표 급을 낮추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수석대표가 김양건이 아닐 경우 우리 측도 차관급 인사가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카운터파트로 통전부장을 집요하게 요구한 배경에는 이번 기회에 협상 상대의 격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기존 장관급 회담은 ‘불균등회담’으로 인식돼 왔다. 회담 의제, 장소를 대부분 북한이 주도했고 수석대표도 통일부 장관보다 격이 낮은 국장급 내각 책임참사가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저쪽에서는 국장이 나오는데 우리는 장관에게 나가라고 하면 (되겠느냐). 그건 상식적인 얘기”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워싱턴에서 누구를 만나 대화할 때, 중국에서 대화하고 협상할 때 늘 하는 것이 국제적 스탠더드”라며 “그런데 남측과 협상할 때 그런 격을 무시하고 진행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남북회담이 있을 때마다 수석대표 ‘격 논란’이 있었고, 수석대표끼리 합의해도 북한에 돌아가 힘을 못 쓰는 문제도 발생했다”며 “박근혜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 차원에서 격 문제를 바로잡으려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가 협상 파트너의 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소모적 기싸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00년 첫 장관급 회담 때도 격 논란이 불거졌고 북측에서 고유권한에 대한 간섭이라고 항의한 적이 있다”며 “어차피 최고지도자 메시지를 가지고 나오는 건데 수석대표를 물고 늘어지는 건 결례”라고 했다.

또 “북한은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를 겸하는 통전부장 직을 우리 장관보다 더 높은 자리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