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 혜택 놓고 4년 싸움… KCC 웃고, 한국유리공업 울고
입력 2013-06-10 18:38 수정 2013-06-10 22:24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건축용 판유리 가격을 담합한 KCC와 한국유리공업에 각각 224억5000만원과 15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국민일보 2009년 6월 26일자 1·3면 참조).
다만 KCC는 자진신고 1순위 자격을 인정받아 과징금 100% 면제 혜택을 받았다. 반면 KCC에 한발 앞서 ‘자수’했던 한국유리공업은 우여곡절 끝에 과징금을 모두 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4년여에 걸친 두 기업 간 ‘배신의 싸움’은 KCC의 완승으로 끝난 셈이다.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담합 합작=국내 판유리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두 업체는 2006년 11월∼2009년 4월 네 차례에 걸쳐 담합을 해 판유리 가격을 10∼15%씩 올렸다. 담합 결과 ‘그린 5, 6㎜’ 판유리의 ㎡당 평균 가격은 3582원에서 6187원으로 73%나 폭등했다. 판유리는 대표적 건축외장 유리로 주로 아파트 건축 등에 사용된다. 두 업체의 부당 이익은 아파트 분양원가 등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두 업체는 전형적인 독과점 업체의 담합 과정을 답습했다. 건전한 가격경쟁 대신 독과점 지위를 악용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산 제품을 몰아내기 위해 2007년 공동으로 덤핑 제소를 해 경쟁자를 물리친 뒤 본격적인 불공정행위에 돌입했다. 두 업체의 영업담당 고위임원은 전용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등 은밀한 방식을 이용했다. 담합 의혹을 피하기 위해 일정기간 시차를 두고 가격을 올리는 ‘꼼수’도 부렸다. 공정위는 담합에 관여한 두 업체 고위임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제로섬(Zero-Sum) 게임’에 KCC 웃다=3년여의 담합 기간 동안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던 두 업체는 공정위가 2009년 3월 19일 현장조사에 착수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한국유리공업의 대주주인 프랑스 기업 생고뱅은 같은 해 3월 말 임원을 포함한 3명의 실무자가 본사 몰래 담합을 저지른 사실을 적발한 뒤 공정위에 자진신고했다. 이를 안 KCC도 뒤늦게 자진신고를 했다. 이때까지는 한국유리가 1순위 신고자, KCC가 2순위였다. 자진신고 1·2순위는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따라 각각 과징금의 100%와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고뱅에서 담합을 저지른 임직원을 징계하자 당사자들은 이에 반발해 담합 장소 등 구체적 증거 제공을 거부했다. 결국 한국유리공업은 자진신고 이후 75일 이내에 추가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 시한을 지키지 못해 1순위 자진신고자 지위를 박탈당했다. 반면 KCC는 사측의 ‘보호’ 아래 담합 관련자들이 성실히 증거를 공정위에 제출해 1순위 자격을 획득했다.
KCC가 웃으며 끝나는 듯한 ‘제로섬 게임’은 아직 반전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한국유리공업이 1순위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한국유리공업의 1순위 지위를 인정할 경우 한국유리공업도 과징금을 100% 면제받게 된다. 그렇다고 KCC의 1순위 자격도 박탈되지 않기 때문에 담합을 저지르고도 과징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세종=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