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7) ‘지적장애 3급’ 내리를 치유한 것은 엄마의 사랑

입력 2013-06-10 17:27


결핍은 있어야 할 좋은 것들이 없다는 의미다. 부모 자녀 사이에 있어야 할 좋은 것들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흔적을 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7번째로 입양한 우리 딸 내리는 지적장애 3급으로 2007년 우리 집에 왔다. 미혼모에서 태어난 내리는 신생아 때 어느 부부에게 입양됐으나 양육 미숙으로 오랫동안 방임돼 4년 6개월 만에 파양됐다.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된 내리를 병원에 데려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게 했다. 내리가 아픔과 상처, 결핍과 어려움을 평생 간직하며 살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내리에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며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내렸고 놀이치료를 받도록 권유했다. 학자들은 어릴 때 결핍이 심할 경우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딸이 먼 훗날 자신을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는 귀중한 사람으로 여기길 바랐다. 또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어떻게 당당히 원하는 걸 성취했는지 고백하길 희망했다.

“내리야! 너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 어른들이 잘못해서 네가 고생하는 거란다. 우리 가족은 널 사랑하기로 작심했어. 너와 죽을 때까지 함께 울고 웃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야. 우리 힘껏 해보자.”

내리가 엄마의 사랑을 느낄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기로 다짐하고 기도했지만 상처 많은 아이가 새 가정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이는 일주일째 내 눈치를 심하게 살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딸을 보면서 애잔한 감정을 수습하기 힘들었다.

상처 입지 않아도, 지적장애가 아니더라도 입양가정에 적응하는 데는 원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2번씩 병원에 다녀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볼 때마다 탄식이 나왔다.

입양을 계속하면서 우리 가정의 삶의 방식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회사를 다니던 남편은 자녀양육을 위해 고시원을 운영했고 때로는 바쁜 나를 대신해 전업주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보조금으로 의료비를 충당하고 살던 집을 줄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노후준비 대신 마이너스 인생을 택했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했지만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을 때마다 나는 호세아서를 읽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부정한 아내를 사랑한 호세아처럼,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한 여호와처럼 상처투성이 지적장애 3급인 내리를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에 도달하면 그대로 끝낼 것 같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상황에 맞게 물 흐르듯 흘러가나 보다. 서로 피곤해서 그랬을까. 6년간의 놀이치료로 딸의 눈치 보는 강도가 옅어졌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를 키우며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이를 뛰어넘기 위해 내가 뼈에 새기듯 듣는 찬양이 있다.

‘그대 주님 만나려거든 그대 앞에 놓여진 그 길 중에서 좁고 험한 낮은 길로 떠나요. 먼저 주님 그길 가셨으니.’

‘좁고 험한 낮은 길’이란 가사가 마음에 들어온다. 우리가 잘 하지도 못하면서 가야 할 책임을 느낀다면 이는 순전히 주님이 먼저 가셨기 때문이리라.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 말씀처럼 우리의 죄와 아픔을 샅샅이 아시고 친히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아픔을 아시는 예수만이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다.

정리=국민일보 쿠키뉴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