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사랑의 묘약이면 허다한 죄도 덮는다
입력 2013-06-10 17:18
‘사랑의 묘약’이라는 오페라를 아는가. 한 마을에 사는 네모리노와 벨 코레라는 두 남자가 아디나라는 한 여인을 사랑한다. 그런데 아디나는 잘생기고 용감한 군인인 벨 코레에게 더 관심이 있다. 그러자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떠돌이 약장사에게 사랑의 묘약을 사서 마신 후,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왜냐면 그것은 싸구려 포도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모리노는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묘약을 한 병 더 사서 마시기 위해서 사랑의 삼각관계 남자였던 벨 코레 상사에게 몸을 팔아서 졸병이 되기까지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진정한 사랑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사랑의 아리아를 부른다. 거짓말 같은 사랑의 묘약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생활하면서 사랑의 묘약을 먹어야 한다. 그 사랑의 묘약은 남을 꼬드기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께 더 미치고 깊은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을 헬라어로 ‘마이니안’이라고 한다. 오늘날도 무엇엔가 미쳤다는 말을 쓸 때 마니아라고 한다. 예컨대, 컴퓨터 마니아, 영화 마니아, 축구 마니아라고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미친 지저스 마니아, 교회 마니아, 사명의 마니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은 불행하게도 선악의 묘약만 먹어 왔다. 그 선악의 묘약은 겉으로 윤리성과 정의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정의감은 독불장군 같은 신앙의 영웅심으로 발전하고 확대된다. 그래서 교회 개혁과 정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선악의 일을 도모한다. 그런데 그런 계획이 교회 내에서 잘 안 이루어지면 일반 언론에 퍼트리고 사회 법정에까지 고발한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를 흠집 내기도 하고 그것이 한국교회에 아픔을 줄지도 모른다. 이유는 사랑의 묘약을 먹지 못하고 선악의 묘약만 먹어왔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도 사랑의 묘약을 먹으면 그 어떠한 허물과 실수, 죄도 우리의 문제로 아파하며 덮을 수 있다. 오히려 그 상처와 실수를 내 십자가로 알고 아픔으로 끌어안으며 눈물로 기도한다. 그럴 때 상대방도 참회할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새롭게 출발하는 전환점과 도약의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선악의 묘약만 먹기 때문에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파멸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사랑의 묘약을 먹자. 그래서 선악의 마니아가 되지 말고 생명의 마니아가 되고 사랑의 마니아가 되자. 그럴 때 한국교회는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비상하는 것처럼, 회복과 부흥의 나래를 펼치며 다시 웅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 선악의 묘약에 취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분열과 파괴를 일삼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의 묘약에 취하여 허물을 덮고 사랑과 생명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