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대타협은 乙의 자세로
입력 2013-06-10 17:48
박근혜정부 100일에 즈음해 많은 정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이들 정책을 모두 실천하겠다고 하니 벌써부터 회의감이 없지 않다.
정책들을 살펴보면 ‘정년 60세’와 ‘경제민주화’가 핵심이다. 남녀 불문하고 6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관행과 관계를 상호 보완적인 상생관계로 정착시켜 나간다는 게 정부의 목표로 보인다.
10년째 63∼64%대에 머물고 있는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는 로드맵이 제시됐고 시간제 일자리 창출, 안전한 보육과 출산, 임금격차 해소 등등이 과제로 설정됐다.
정년 60세와 경제민주화가 핵심
정부가 정년을 문제 삼았던 때는 김영삼정부 때다. 교육개혁 명분으로 1995년 교원정년 단축 정책안을 내놨다. 우리 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운영되던 김대중정부 때인 1998년 교원 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됐다. 두 정부를 거치면서 지금의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의 정년이 틀을 잡았다.
당시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하면서 사회안전망을 만들지 않아 사회적으로 엄청난 시련이 뒤따랐다. 아버지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값싼 일용직 일자리에 매달렸다. 가정해체가 끝없이 이어졌고, 지금도 그 참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이제 정년을 60세로 연장해 새로운 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다. 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고용과 근로의 가치가, 근로자의 생활 패턴과 삶의 목표가 바뀌는 엄청난 사회·경제적 대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당사자인 노사정(勞使政)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실천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어림없는 상황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갑을관계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노사정이 이런 문제들을 협력적으로 풀어갈 것을 우선 합의했다. 그렇지만 양대 노총 중 한 조직인 민주노총이 벌써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타협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단위나 부분이 있어선 대타협이라고 할 수 없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의 민주노총 방문은 논의를 성실하게 시작하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민주노총 방문은 2년9개월 만이다. 방 장관은 조건 없는 대화로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입구에서 엘리베이터까지는 10m 정도인데 이를 거쳐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기까지 20분이 걸렸다. 험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계 인사 수십명이 정부 규탄과 함께 해고 근로자 복직 문제,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등을 요구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소홀히 했던, 노동계 스스로도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사안들이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데자뷰를 없애는 게 좋겠다. 굳이 덧씌워서 갈 만한 훌륭한 종전 정책들은 많지 않다.
모두 결과 수용하는 타협이어야
타협은 상생을 도모하는 일이다. 따라서 대타협엔 경제민주화 코드가 핵심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정부가 목표를 설정하고 밀어붙이는 노사 갈등의 중재 수준이 돼선 곤란하다.
정부부터 국민과 모든 협상 단위에 항상 을(乙)이라는 생각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100일을 되돌아보면 을보다는 갑(甲)의 행태가 훨씬 많이 드러난 게 사실이다. 소통 부족이 대부분이었다. 대선 공약 사항인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규모와 인선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난다. 회의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