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시위 확산… “최루탄은 국민 음료” 저항

입력 2013-06-09 18:44

“타이이프는 사퇴하라!” “연합하여 파시즘에 대항하라!”

좀처럼 뭉칠 일 없는 경쟁 관계의 터키 축구팀 베식타스,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팬들은 8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탁심 광장을 행진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최루탄이 터키 국민 음료다”라고 쓰인 그래피티도 광장에 등장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주류 규제안을 발표하며 “터키 국민 음료는 라크(전통주)가 아닌 아이란(요구르트)”이라고 말한 것을 비꼰 것. 낮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대학생,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 노인, 관광객 등 각양각색의 시민들은 저녁이 되자 수만명으로 불어났다. 밤에는 폭죽이 터지며 시위 열기가 고조됐다.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반정부 시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위 9일째인 이날에도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권위주의 정부와 이슬람에 근간을 둔 집권 정의개발당(AKP)에 대한 반감이 대중 분노로, 최근 10년간 가장 극렬한 시위로 확산되는 것이다.

대규모 시위가 1주일을 넘기면서 아이콘도 변화하고 있다. 최루탄을 맞고 있는 ‘빨간 드레스의 여인’ 다음 떠오른 상징은 펭귄.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지난달 31일 미국 CNN은 터키 시위 현장을 보도한 반면 CNN투르크가 펭귄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 CNN투르크는 터키 최대 민영 미디어그룹인 도안미디어그룹과 미국 타임워너가 합작한 터키 현지법인이다.

펭귄 가면을 쓴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유명 배우 세르미얀 미디아트는 펭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CNN투르크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조어도 유행이다.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를 ‘약탈자(capulcu·차풀주)’라고 비난하자 터키 은행인 가란티방크의 에르군 외젠 대표이사, 대기업인 보이네르홀딩스의 젬 보이네르 회장 등이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차풀링을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차풀주에서 유래한 차풀링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권리를 위해 싸우다’란 뜻으로 등재됐다.

에르도안 총리는 말실수로 주 터키 미국 대사관과도 신경전을 벌였다. 에르도안 총리가 7일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논의하는 콘퍼런스에서 “미국 월가 점령 시위에서 17명이 숨졌다. 터키 경찰만 과잉진압한 게 아니다”고 항변하자 대사관은 트위터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여한 슈테판 퓔레 EU 확대담당 집행위원도 터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터키의사협회에 따르면 이날까지 부상자는 4785명, 사망자는 시민 2명과 경찰 1명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