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도경] 학교폭력 피해자는 이사나 가라니…
입력 2013-06-09 18:14 수정 2013-06-09 22:48
“아이가 게임 중독자가 돼 간다. 무서워 학교 못 가고 집에서 게임으로 울분을 달랜다. 불쌍해서 야단도 못 친다. 가해학생은 징계 끝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난 4월 학교폭력으로 고교를 자퇴한 피해학생의 아버지가 9일 국민일보에 토로한 내용이다. 형사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는 사회에 남아 보호받고 가해자는 격리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가해학생도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구실로 가해학생은 기존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학업을 마치는 기회를 얻는다. 반면 피해학생은 어쩔 수 없이 전학 가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모순이 벌어지기 일쑤다. 가해학생들로부터 보복 우려,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교장·교감 등과의 갈등, 피해학생·가족들의 심리적 위축 등 이유는 많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현장에서 빚어지는 가장 비교육적인 모습이다. 학생들은 비록 학교폭력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당하는 사람, 약한 사람만 억울한 것이 현실’이라는 그릇된 교훈을 얻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사비 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 학교에 안내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에서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중인 이 제도는 피해자가 보복범죄를 우려해 거주지를 옮길 때 부동산 중개료를 제외한 이사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까지 20여명이 이 제도의 수혜를 받았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줄여주자는 취지로 이해할 만하지만 씁쓸하다. 모순적인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태도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사 비용, 교복비 등 다양한 비용으로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뒤처진 학업을 만회하기 위한 사교육비를 토로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이런 수많은 비용 중 이사 비용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것인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전학을 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조치 없이 이사비용을 부담해준다는 것은 ‘골치 아프니 차라리 멀리 전학가라’는 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정책기획부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