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라인강의 기적’ 발원지 ‘삼성의 기적’ 염원 담겨

입력 2013-06-09 17:33

삼성 신경영 20년의 미래

왜 프랑크푸르트였을까. 신경영 선언은 1993년 6월 7일 단 하루 동안에 이뤄진 ‘깜짝쇼’가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6개월여 동안 미국과 일본, 유럽을 오가며 진행된 ‘신경영 대장정’의 일부였다. 프랑크푸르트,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 런던, 로잔 등을 돌며 10여 차례 이상 직접 해외 회의를 주재했던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포 장소로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프랑크푸르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독일의 경제회복을 뜻하는 ‘라인강의 기적’ 발원지다. 따라서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것은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삼성의 기적’을 이루자는 바람을 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삼성 측의 해석이다. 실제로 삼성의 세전이익이 신경영 선언 직후인 1993년 8000억원에서 2012년 38조원으로 무려 47배나 증가했으니, 그 바람대로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거뒀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프랑크푸르트여야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유럽에서 갖는 상징적인 위치 때문이다. 당시 세계 각국 기업들은 1993년 11월 유럽연합(EU) 출범을 앞두고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런던과 파리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항공·철도·자동차 등 교통의 중심지로, 그 어떤 도시보다 당시 유럽에 불어온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역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이 임원들에게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직접 보고 배우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의 생산시설은 항만이나 고속도로, 공항 근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 회장이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답게 도시 기반시설이 잘 정비된 프랑크푸르트를 눈여겨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LA나 도쿄가 아니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당시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은 소니와 NEC 등 일본 가전업체였고, 이들의 주력시장은 미국이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신경영을 선포해 굳이 일본 업체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혜숙 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