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질투하시는 하나님
입력 2013-06-09 17:19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그의 책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일본 여성을 소개한다. 아라카와라는 60대 여성인데, 한 건강식품회사의 세일즈 매니저로 근무하는 여성이다. 수만 명의 세일즈맨을 제치고 늘 좋은 성과를 거두는 이 여인은 놀랍게도 맹인이다. 그녀는 하루 660㎞, 한 달 평균 2만㎞를 달린다고 한다. 주문을 받기 위해 왕복 7시간 거리도 기쁘게 달려간다. 이것은 택시기사의 운행 거리를 훨씬 넘는 수준인데, 아들이 운전을 대신 해준다고 해도 고령의 맹인 여성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이다. 실제보다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이 여성을 향해 윤 회장은 세일즈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대답이 걸작이다. “가슴과 사랑으로 팔았지요!”
열정이 담길 때, 세일즈는 이미 돈벌이의 수준을 넘어서 구도자의 진지함과 감동을 풍겨낸다. 가수 비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는 모든 사물을 보면 저것을 춤으로 출 수 없을까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들고 가시면 지팡이로 출 수 있는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차를 탈 때도, 차 타는 방법으로 무언가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해요.”
세일즈를 하든지, 춤을 추든지, 무슨 일이든지 열정이 담길 때 거기에는 감동과 생명이 있다. 열정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열정이 빠진 것, 그것은 생명이 빠진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빠진 세일즈가 돈벌이에 불과한 것처럼, 열정이 빠진 신앙은 ‘종교생활’에 불과하다. 그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무기력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겹기까지 하다. 예수님은 종교생활에 익숙한 바리새인을 역겨워하셨다. 어떤 인간에게도 바리새인에게 퍼부은 것처럼 비난을 하신 적이 없다. 열정이 빠진 신앙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열정이라고 하면, 사실 그 원조는 하나님이시다.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향해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질투’란 특별한 관계를 의미한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질투하지 않는다. 길 가는 모든 이성을 보며 질투를 느낀다면 그는 정신이상자다. 질투란 특별한 사랑의 관계를 전제한다.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향한 열정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은 질투할 정도로 사랑의 열정을 갖고 계신다. 그것이 유감없이 표현된 자리가 십자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한 자는 ‘하나님처럼’ 사랑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엘리야는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때 ‘열심’이란 바로 ‘질투’를 말한다. 그의 마음속에 참을 수 없는 불이 있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골수에 사무친 불’이 있었다고 했다.
문득 아라카와를 생각하며, 또 가수 비를 생각하며 나는 혹시 껍데기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세일즈와 춤을 향해 이런 열정을 가진다면, 나를 질투하듯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차가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열정이 빠진 것이 가장 큰 죄다. “지금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 사무엘 체드윅의 말이 기억난다.
박지웅<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