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이효리와 서태지

입력 2013-06-09 18:24 수정 2013-06-10 00:03


가수 이효리(34)의 연예계 15년 커리어를 뒤에서 기획해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존경할 생각이다. 잠시 떴다 금세 잊히고 그 박탈감에 목숨까지 버리는 무대에서 이효리는 15년을 버텼다. 그냥 버틴 게 아니라 줄곧 A급 상품성을 유지하다 지난달 5집 앨범 ‘배드걸’이 음원차트를 싹쓸이하며 다시 정상에 섰다. 그녀의 경력이 특별한 건 15년간 시도한 네 차례 ‘변신’ 때문이다.

가요계에 걸그룹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이었다. 7월 ‘베이비복스’, 8월 ‘디바’가 차례로 데뷔하더니 11월 SM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 ‘S.E.S’가 첫 앨범을 60만장이나 팔아치웠다. 이효리는 이듬해 5월 데뷔한 ‘핑클’ 멤버였다. 핑클은 S.E.S를 꺾고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1세대 걸그룹의 코드는 ‘요정’이었다. 누가 더 청순하고 귀여운지 겨룬 끝에 ‘국민요정’ 타이틀은 후발주자 이효리에게 돌아갔다.

요정의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새로 등장하는 걸그룹마다 심상찮은 율동으로 섹시댄스를 선보이던 2003년 8월, 이효리는 ‘10 minutes’란 곡을 앞세워 솔로로 데뷔한다. 어떤 남자든 10분이면 유혹한다는 노랫말을 실천하려는 듯 파격적인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고, 예능프로에선 “어려서부터 ‘발육’이 좋았어요” 같은 멘트를 날렸다. ‘요정’ 출신 ‘섹시스타’는 거의 한 달간 스포츠신문 1면에 머물며 ‘이효리 신드롬’을 일으켰다.

MBC ‘무한도전’에 KBS가 ‘1박2일’로 맞서면서 연예인의 망가진 모습이 방송가 대세로 자리 잡을 무렵, 이효리는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 몸뻬 차림에 눈곱을 달고 카메라 앞에 섰다. ‘패밀리가 떴다’는 방송 두 달 만에 시청률 20%(2008년 8월)를 넘어서며 ‘무한도전’의 아성을 뛰어넘기도 했다.

2010년 이효리의 4집 앨범은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1년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채식주의자가 돼 있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모피쇼 반대 트윗을 올리고, 동물보호 콘서트를 열었다. 김장훈(기부), 차인표(입양), 김제동(정치발언) 등이 ‘개념 연예인’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동물복지 활동가로 다시 대중을 찾아간 이효리는 그해 말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시상식에서 연예인 부문 수상자가 됐다.

국민요정에서 섹시스타로, 다시 몸뻬 연예인, 개념 연예인으로 변신할 때 이효리는 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듯 변신을 거듭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모습이 삼성을 닮았다.

“소비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수요는 조사하는 게 아니라 창출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이 멋진 말에 어울리는 가수는 92년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다. 한국에 없던 음악으로 시장을 개척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였다.

한국 가요사를 쓰면서 서태지를 뺀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대중은 이혼 스캔들과 결혼 뉴스에서나 서태지를 접할 뿐, 찾아 듣는 건 이효리의 노래다. 서태지의 퍼스트 무버 음악은 위대하고, 이효리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효율적이다.

삼성이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맞았다. 다들 이제 애플처럼 돼라,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라고 한다. 공룡에게 알 대신 새끼를 낳으라는 주문처럼 들려 생각해봤다. 삼성과 애플, 어느 쪽이 강한 기업일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