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생명력, 풋풋한 상상력의 세계 ‘설악산 작가’ 김종학 화백 희수展
입력 2013-06-09 17:12 수정 2013-06-09 13:55
올해 희수(喜壽·77세)를 맞은 김종학(사진) 화백은 ‘설악산 작가’로 불린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나와 1979년부터 설악산에 파묻혀 작업하는 그의 꽃 그림은 인기가 좋다. ‘물방울’을 그리는 김창열(84) 화백과 함께 국내 생존 작가 중 그림값이 가장 비싸다. 그래서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설악산’ ‘꽃 그림’ ‘블루칩’ 등이다. 이것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올해 초 어느 날, 혹한의 날씨에 갤러리를 찾은 그는 한 컬렉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는 이 그림이 정말 좋은데, 수련 위의 개구리 한 마리가 혼자 외로워 보여요.” “그 그림엔 개구리가 두 마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봐도 개구리는 한 마리뿐이었다. “다른 한 마리는 수련 아래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숨어있는 개구리를 보지 못한 것처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가의 진면목이 있지 않을까. 12일부터 7월 7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신관·두가헌에서 여는 그의 희수전 ‘진정(眞情)’은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기존 작품과 신작 등 60여점이 나온다. 갤러리현대의 3개 전시장을 한 작가의 개인전으로 모두 채운 것은 처음이다.
신관에는 ‘설악산 여름’ ‘잡초’ 등 2∼5m에 이르는 1980년대, 90년대, 2000년대의 대작들과 최근 새로 작업한 대작까지 주요작 10점이 걸린다. 아무렇게나 뻗어나간 나뭇가지와 숲 속에 엉켜있는 넝쿨은 저마다의 질서와 조형미를 구축하며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전달한다. 자연을 그린 풍경화이되 마음속 조형미를 담은 추상화이다. “구상에 오른발을 담그면 추상에 왼발을 담고 있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작가의 지론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오랜 기간 수집해온 전통 농기구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길가에 쓰러진 잡초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름다움에서 선과 드로잉의 영감을 얻는다는 작가는 옛것으로부터 미감을 찾아내고자 했다. “다른 작가들이 작업의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골동품을 수집한다”고 그는 말한다.
본관에서는 ‘월하(月下)’ 등 신작들이, 두가헌에서는 1970∼80년대 작업을 엿볼 수 있는 판화와 다양한 인물화가 전시된다. 작품 속 각 인물들의 옷차림은 최근 유행에 뒤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신선하다.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패셔니스타’처럼 차려입은 40대 남자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인물화는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로 작가의 풋풋한 상상력이 깃들어 있다.
1964년 첫 개인전 이후 평생 전업 작가로 활동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서양 현대미술을 공부한 것에 전통미를 커닝하면서 비빔밥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앞둔 그는 “향후 도전과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마음 같아선 딱 30대인데,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 40대에는 속도감 있게 그렸지만 이제는 70대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을 잘 그리려고 한다”며 웃었다(02-2287-3500).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