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상정] 미술품 손해보상제도

입력 2013-06-09 19:00


유사 이래 인류는 테러 등 무수한 인재와 지진이나 폭풍 등 천재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인재나 천재는 미술품의 교류에 적지 않게 악영향을 끼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보험제도라는 것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보험사고가 전쟁이나 지진 등으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 물론 특별 약정을 통해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경우에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작품 값의 상승으로 해외작품을 우리나라에 들여오려면 보험료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그대로 관람자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특히 우리는 남북이 분단되어 북한 변수가 항상 작용한다. 외국의 미술관 등 소유주들은 한국이 전쟁의 위험이 높은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작품을 아예 내놓지 않든지, 내놓더라도 아주 높은 수준의 보험 가입을 요구한다고 한다.

해외작품의 국내 전시에 활용

우리나라가 지진에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낮은 단계의 지진은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 또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피해도 드물지 않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미술품을 빌려 오려는 우리의 입장을 약화시킨다. 반면에 우리의 문화적 욕구는 점차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국가의 미술품 손해보상제도이다. 말하자면 빌려온 미술품이 만일의 사태로 피해를 입었으면 그 손해를 국가가 보상해 주는 것이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료로 냈어야 하는 부분만큼 절약하게 된다.

1978년 유네스코는 ‘동산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권고’를 한 바 있고, 그 하나로 정부보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즉 국가가 손해의 일부를 떠맡거나 또는 일정부분을 초과하는 손해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해외 미술품을 빌려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에 일본은 2011년 3월의 대지진 직후, ‘전람회에 있어서 미술품 손해의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현재 이 법의 대상이 되는 전시회는 개최 예정 기간이 20일을 넘어야 하고, 전시를 예정한 미술품 중 주요한 것이 해외로부터 빌려오는 것이어야 하며, 대상 미술품의 약정평가총액이 50억 엔을 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영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하며, 이익이 생긴 경우에는 당해 이익을 문화진흥 기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보상 내용은 기본적으로 민간보험과 유사하나 정부에 의한 보상은 손해가 일정액(통상의 경우는 50억 엔, 지진이나 테러의 경우는 1억 엔)을 넘어야 발생하며, 상한은 950억 엔까지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최자는 50억 엔에 대해서만 보험에 들어두면 안심하고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문화복지 향상

국가 손해보상제도는 1974년 스웨덴, 1975년 미국에서 도입된 이래,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현재 G8국가 중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EU의 경우는 6할 정도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그 사이 약 1000여회의 전시회를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주최자가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절약한 비용이 약 3억3500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이 제도가 없었다면 상당수의 전시회는 개최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 것은 그 사이 실제로 국가가 부담했던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도입한 이래 약 30년간 모두 2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보상금은 약 10만 달러로 되어 있다. 우리도 이러한 제도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도입하여, 보다 많은 해외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이로써 문화복지가 향상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정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