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게임의 규칙

입력 2013-06-09 19:03

6회말 2사 1·3루에 2스트라이크 1볼. 투수가 공을 던진다. 타자가 힘차게 배트를 돌리지만 빠르고 낮게 날아든 공은 포수 미트에 꽂힌다. 삼진 아웃. 경기는 A팀의 2대 0 승리로 끝난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사회인 야구에서 보기 드문 완봉패라니. 게다가 A팀은 지난 시즌까지 리그 꼴찌를 도맡았었다. 이번 시즌에 A팀이 영입한 투수는 구속도 구속이지만 제구력은 아마추어 선수급이다. 역시, 그렇지. 그는 선출(아마추어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부정 선수’를 낸 A팀은 실격패를 당했다.

정부가 발주한 대형 프로젝트에 내로라하는 기업이 뛰어들었다. 기술력에 자신 있는 중소기업 B사 사장은 최저가 낙찰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이문을 남기지 않는 수준에서 수주금액을 정했다. 프로젝트를 따내면 다른 사업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부수적 효과를 기대했다. 어, 그런데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한 달 전에 퇴사한 기술개발본부장이 대기업 C사 인사들과 나타났다. 찜찜한 마음은 C사의 낙찰로 현실화됐다. B사가 자랑하는 기술을 C사도 확보했다는 후문마저 들렸다. ‘부정’과 ‘규칙 위반’이 의심되는데도 결과는 뒤집어지지 않는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다.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인 장 르누아르는 1939년 ‘게임의 규칙’이라는 흑백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비난·풍자로 가득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지배계층을 신랄하게 조롱한 명작으로 재평가 받았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최근 펴낸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에서 ‘게임의 규칙’을 어긴 결과가 무엇인지 역설한다. 그는 정치적 권모술수, 부당한 정부 정책 속에서 상위 계층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시장이 형성돼 왔다고 비판한다.

‘상위 1%의 이익이 나머지 99%에게도 이익이 된다’, ‘성장으로 파이를 키운 뒤 더 큰 열매를 나누자’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은 골 깊은 불평등만 낳았다. 불평등은 부의 집중, 산업구조 왜곡, 소득·정보·교육 양극화로 얼굴을 바꾼다. 그리고 사회갈등 폭발, 경제위기 등 우울한 결말을 불러온다. 영화 ‘게임의 규칙’에서 주인공이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듯.

규칙을 지키며 ‘게임’을 해야 국민도, 기업도, 국가도 모두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단순한 이 한마디가 ‘경제민주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