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카터와 다섯차례 ‘해빙 회담’

입력 2013-06-07 18:31


시진핑 주석과 버락 오바마 두 정상이 전례 없이 캘리포니아 휴양지에서 넥타이를 푼 채 대화에 나서면서 시 주석보다 먼저 미국을 방문한 중국 지도자들의 사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미국 수교 직후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미국 방문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중국 지도자로는 첫 방미였던 데다 냉전시대 중·미 양국의 해빙을 모색하는 발걸음이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1월 28일 방미길에 오른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이끈 중국의 실질적인 지도자였지만 당시 공식 직책은 국무원 부총리. 하지만 미국은 모든 의전을 국가 원수 급에 맞춰 진행시켰다.

덩샤오핑은 방미 9일 동안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과 다섯 차례 회담을 가진 것을 비롯해 모두 80차례 회담이나 회견을 했다. 특히 워싱턴DC 방문 3일 뒤에는 공업 지역을 6일 동안 둘러보았다. 갓 개혁·개방을 시작한 당시 중국 상황에 걸맞은 행보였다.

특히 덩샤오핑은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양국 수교에 기여한 사람들을 초대해 자택에서 베푸는 만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1990년대 탈(脫)냉전시대에는 중국 지도자의 미국행이 더욱 빈번해졌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1993년, 1997년, 2002년 세 차례나 미국을 방문했다.

1993년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 초청으로 시애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소원해진 중·미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7년 10월 국빈 방문 당시 장 전 주석은 9일 동안 7개 도시를 둘러봤다. 캘리포니아 남부 화교들이 베푼 환영식에서는 ‘밝은 달빛이 창가에 비치네’라는 중국 전통극 경극(京劇)의 한 대목을 부르기도 했다. 2002년 10월 방미 때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 초대됐다. 미국 대통령이 사회주의 국가 원수를 이곳에 초대하기는 처음이었다.

2011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미국을 방문할 당시에는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로 신경전이 한창이었다. 국빈 방문한 후 전 주석은 미국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예외적으로 국빈 만찬에 앞서 백악관에서 후 전 주석을 위한 ‘사적으로 초대한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베이징=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