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권 위폐 2억어치 유통…40대 8년간, 같은 상점서 또 쓰다 덜미

입력 2013-06-07 18:07 수정 2013-06-07 22:26

“껌 하나 주세요.”

지난 3월 초 말쑥한 정장 차림의 김모(48)씨는 부산의 허름한 슈퍼마켓에서 구겨진 5000원짜리 지폐를 내고 500원짜리 껌 한통을 샀다. 이어 건너편 철물점으로 이동해 전기테이프 하나를 사면서 역시 5000원짜리를 주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슈퍼마켓과 철물점 주인은 며칠 후 은행 입금 과정에서 이 돈이 위조지폐임을 알았다. 주인들은 모두 노인이었고 상점 인근에는 CCTV도 없었다.

김씨는 지난 1월에도 서울 자양동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잔돈을 바꿨다. 가게 주인 황모(62·여)씨는 그 돈이 위폐라는 은행 얘기를 듣고 지폐번호를 적어뒀다. 이런 사실을 모른 김씨는 지난 5일 이 가게에 다시 들러 5000원짜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으려다 황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무려 8년 동안 5000원권만 위조해 생활비로 써온 ‘위폐 생활자’였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7일 2005년부터 5000원 구권 지폐 5만여장을 위조해 4만4000여장(2억2000만원)을 유통시킨 혐의(통화위조 및 사기)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경기도 성남의 단독주택 지하에 작업실을 차려놓고 포토샵 등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5000원 구권 화폐를 만들었다. 작업실에는 노트북, 프린터, 제단기 등 각종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김씨는 2004년 유통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뒤 지폐 위조에 손을 댔다. 아이의 천식 치료비를 마련하려 시작한 일이 8년이나 계속됐다. 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한 그는 컴퓨터로 각종 지폐의 위조 연습을 하다 감별 체계가 비교적 허술한 5000원권을 타깃으로 했다. 홀로그램은 물론 율곡 이이 초상화의 그림자 효과까지 구현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적발한 5000원권 위조지폐 4438장 중 4239장이 김씨가 만든 것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