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I am F, “그리스 구제금융 잘못 다뤘다” 고백
입력 2013-06-07 18:07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고강도 긴축과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뒤늦게 잘못을 시인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대해서도 똑같은 반성문을 썼다.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내몰린 그리스인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졌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IMF는 내부보고서에서 임금삭감과 세금인상, 복지재정 축소 등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그리스에 어떤 타격을 가져올지 과소평가했다고 시인했다. 구제금융의 조건이었던 혹독한 긴축이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것으로, 결국 그리스는 경제 회복의 ‘약발’도 없이 일방적인 고통만을 강요당한 셈이다.
대외비로 분류됐던 보고서에서 IMF는 “시장의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아 예상보다 더 심각한 침체 속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하며,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잔류와 주변국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억제한 것 정도를 긴축의 효과로 꼽았다.
IMF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2010년 그리스에 첫 구제금융을 제공한 이래 지금까지 2000억 유로(약 292조원)를 쏟아부었지만 그리스 경제는 현상 유지조차 힘든 상황이다. 긴축을 통해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를 줄이려 했던 IMF의 진단은 도리어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부작용을 불러왔고, 높은 실업률(27%)이라는 심각한 합병증마저 유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현지 언론들도 ‘IMF, 범죄 인정’ 등의 제목으로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며 강요된 고통과 여전히 희망 없는 경제현실을 비판했다. 넝마주이를 하는 아테네 시민 아포스토로스 트리카리노스(59)씨는 통신에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지만, (고통을 강요한 이들이) 용서가 안 된다”면서 “긴축의 고통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서에 대해 IMF가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 수년간 IMF의 실수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강조했고, 그리스 야권은 “그리스를 인도주의 위기로 몰아넣은 긴축정책을 당장 폐기하라”고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IMF의 이런 뒤늦은 고백은 과거에도 반복된 ‘전력’이 있다.
2003년 7월 공개된 IMF 산하 ‘독립평가국’ 보고서에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잘못된 정책을 적용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인정한 대목이 나온다. 당시 보고서는 “IMF가 한국 정부에 긴축재정을 강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황이 더 악화되는 역효과를 냈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IMF 주요 출자국들이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하려 드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