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캠프 페이지
입력 2013-06-07 18:52
존 데니스 페이지 중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지만 눈이 나빠 실패했다. 그러나 프린스턴대에 진학해 ROTC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포병 병과인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캔자스주 레벤워스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교관으로 근무했고, 6·25전쟁에 자원해 육군 10군단 예하 포병부대 장교로 참전했다.
페이지 중령이 6·25전쟁에서 전투에 참가한 시간은 단 12일뿐이었다. 그가 한국 땅을 밟았을 때 10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함흥까지 진격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은 평양을 버리고 평북 강계에 임시 수도를 차렸고, 원산에 상륙한 해병 1사단과 합류한 10군단에는 해발 2000m가 넘는 개마고원의 산들을 넘어 강계를 공략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11월 말, 낮에도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가 계속될 때였다.
하지만 군 사령부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중국군의 참전이었다. 원산에서 강계로 가는 길목인 함남 장진에는 이미 중국군 9병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7개 사단, 12만명 규모였다. 미군 전사(戰史)에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적을 만난 미군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페이지 중령은 피란민과 퇴각하는 군인들을 엄호하다 부대원들과 함께 전사했다. 그러나 그의 활약에 미군은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군인 12만명과 민간인 10만명이 흥남부두에서 군함 193척에 나눠 타고 귀환한 흥남철수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페이지 중령은 1957년 최고의 전쟁영웅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미군은 1951년부터 사용하던 강원도 춘천 비행장에 부대를 건설하면서 이름을 ‘캠프 페이지’라고 지었다. 이후 미군 2사단 아파치 헬기 부대 주둔지로 쓰였고, 2005년 우리 정부에 반환됐다. 이 캠프 페이지가 8일부터 유채꽃이 활짝 핀 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경춘선 춘천역 바로 옆이고, 춘천 봄내길과 연결돼 의암호 주변으로 여유로운 산책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강 자전거길로도 이어진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캠프 페이지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페이지 중령과 6·25전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