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되새기는 순교정신] 순교자의 피 복음의 꽃 피우다
입력 2013-06-07 17:08
6·25전쟁을 비롯,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을 떠올리는 호국보훈의 달. 그리스도인이라면 순국선열을 기리는 6월에 나라뿐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순교정신을 한 번쯤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특히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주일만 지키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나 주일예배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최근 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죽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 나라를 지킨 순교자들
조국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일이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 가운데 북한군에 의해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1891∼1950·여)는 전남 신안군 일대의 섬 선교에 헌신해 ‘도서(島嶼) 복음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는 경성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32년부터 신안군 등지에 100여개 교회와 기도처를 세웠다. 문 전도사는 고무신을 신고 섬마을 곳곳을 다니며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헌신하다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신안군 수곡리에서 태어난 그는 27년 목포에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다음해 세례를 받았다. 문 전도사가 개척한 증동리교회 입구에 51년 세워진 그의 기념비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이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밀알 한 개가 따(땅)에 떠러저(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라.”
복음의 밀알이 된 그가 전도에 힘쓴 증도의 복음화율은 현재 약 90%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도가 무속신앙을 받들기 쉬운 섬마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일제 강점기 극심했던 기독교 탄압에 저항한 순교자들도 있다. 주기철 목사(1897∼1944)는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다 설교 금지령을 받았고 38년 일본 경찰에 검거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순교했다. 주 목사는 3·1운동에 참여했으며 26년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우상숭배를 거부한 주 목사는 35년 금강산 수양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목사는 일사각오(一死覺悟)를 가질 때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라며 “교회 지도자가 일개 순사 앞에서 쩔쩔매서야 되겠는가”라고 설교했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복음의 불모지이던 조선 땅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죽음도 기억해야 한다.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1840∼66)는 1866년 9월 평양 대동강변에서 조선 관군의 칼에 순교했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통역관으로 와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극단적인 평을 받기도 했던 그는 자신을 처형하려는 군인에게도 성서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더 절실한 순교정신
순교란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 의미는 초기 교회 지도자들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네로 황제가 군림하던 로마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고,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삶과 죽음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이제 종교탄압이 극심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순교의 피가 교회를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던 시대는 지나갔으나 여전히 하나님 말씀은 그 정신을 이어갈 것을 강조한다. 이는 매년 6월 둘째 주일을 ‘순교자기념주일’로 정한 예장 통합 교단을 비롯해 많은 교회가 순교자들을 기리는 기도를 드리는 까닭이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물론 영웅적인 죽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아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나가려는 기도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1956년 군종하사가 된 이후 군 선교를 위해 묵묵히 신앙생활을 이어온 권동수(80) 원로장로의 삶 역시 은혜롭다.
권 장로는 78년 전역한 이후에도 섬기던 육군 25사단의 상승교회를 떠나지 않고 봉사했고 거동이 불편한데도 기도드리기를 쉬지 않는다. 그는 “39년 전 땅굴 수색 작전을 펼 때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고 기도대로 북한의 땅굴을 발견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숨이 멎는 날까지 하나님께 군 복음화를 위해 기도드리는 게 소원”이라고 7일 말했다.
목회자들은 순교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손인웅 덕수교회 원로목사는 “현대인들에게 순교적 삶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으면서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전병금 강남교회 목사는 “지금이 바로 순교정신을 통해 영적 무장을 해야 할 때”라며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각오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