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되새기는 순교정신] ‘일사각오’ 정신을 좇다
입력 2013-06-07 17:14
전남 신안군 증도를 ‘천국의 섬’으로 만든 문준경 전도사, ‘사랑의 성자’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 인민군에게 “예수 믿으라”고 외치다 집단 희생된 병촌교회 66명의 성도들…. 이들 믿음의 선배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지켰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순교 신앙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워질 수 있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순교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느슨했던 신앙을 점검하는 건 어떨까. 국내 대표적 순교 유적지를 정리해본다.
◇선교 역사를 한눈에=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가면 우리나라 기독교 현장을 지켜온 순교자들을 만날 수 있다. 영락교회 권사가 36만3000㎡(11만평)의 부지를 기증, 건평 1108㎡(336평) 3층 건물로 지어져 1989년 11월 개관했다. 129년 전인 1884년 이 땅에 기독교 씨앗이 처음 뿌려진 이래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이들은 최대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기념관 측은 추산했다. 기념관에는 300명의 순교자 명단이 헌정돼 있고, 초기 선교사들이 활동 모습 등 200여점의 사진도 있다.
부산·경남에는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이 있다. 창원시 마산공원묘원에 있는 이 기념관에는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숨진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서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 ‘츌애굽쥬일셩경공과’ ‘포켓용 신약성경’, 권임함 선교사의 ‘타자기’ 등 1000여점의 자료를 볼 수 있다.
경남지역에서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사역 현장도 만날 수 있다. 1897년 창원에서 태어난 주 목사는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했다. 지난해 7월에는 창원시 남문동에 연면적 1045㎡ 지상 3층 규모의 주기철목사기념관이 착공돼 오는 10월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기념관에는 전시실을 비롯한 영상실, 자료실 등이 갖춰진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강원도 철원에는 항일운동과 6·25를 겪으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순교자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원군 장흥교회에는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88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1909년 기독교에 입교한 서 목사는 협성신학교를 졸업한 뒤 25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47년 마을 청년들이 퇴각하던 공산당원들을 잡아 복수심에 죽이려 할 때 서 목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공산 포로를 돌려보냈다. 1·4후퇴로 다시 공산당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마을 주민은 몰살 위기에 처했으나 서 목사 덕에 목숨을 구한 이들의 호소로 주민들은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서 목사는 50년 12월 31일 북한 정치보위부에 체포됐고 이듬해 1월 8일 70세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병촌교회가 있는 충남 논산의 작은 마을 성동면 개척리는 ‘은혜의 땅’으로 불린다. 6·25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불리해진 북한군은 퇴각하기에 앞서 50년 9월 27∼28일 병촌교회 성도 66명을 삽, 몽둥이 등으로 죽여 매장했다. 56년 3월 교회가 재건된 후 순교자 기념 예배당이 건립되고 교회 뜰에 ‘6·25동란 순교자기념비’가 세워졌다.
전남 영광 역시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 1908년 유진 벨 선교사가 설립한 야월교회는 선교사 가족을 포함, 65명의 성도가 순교했다. 염전에 웅덩이를 파고 단체로 성도들을 죽였다. 인근 염산교회도 핏값으로 세워진 순교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77명의 성도는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를 부르며 하늘나라에 갔다. 전남에서는 여수에 있는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과 애양원, 신안군 증도에 개관한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제주에서는 기독교순례길을 걸으며 이 지역 출신 목회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교회는 제주 출신 1호 목사이면서 첫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의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기풍 목사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회자가 된 이 목사는 지역 복음화에 힘쓰다 48년 6월 예배를 드리러 가던 중 공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기풍선교기념관도 제주시 조천읍에 들어서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최영경·노희경 기자 hkn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