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다중전쟁과 한국교회

입력 2013-06-07 17:48


다중(多衆)이 왔다. 다중은 군중(群衆)이 아니다. 군중은 정치, 경제, 종교적 관심과 상관없이 모인 무리이다. 다중(multitude)은 대중(大衆)이 아니다. 대중은 현대사회에서 엘리트와 대비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다중은 민중(民衆)이 아니다. 민중은 정치적인 개념으로서 지배계급과 대비를 이루는 피지배계급의 구성원이며 매우 이념적인 개념이다.

다중은 폭중(暴衆)도 아니다. 폭중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폭력성을 띨 때 가끔 폭도(暴徒)로 불리는 무리를 가리킨다. 다중이 군중, 대중, 민중, 폭중 등과 구별되는 것은 그들이 개별성과 공통성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다중은 개체성을 지니면서도 생명, 환경,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므로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는 전략가요 열정적인 사회 운동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중은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며,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며(bottom-up),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다. 다중의 시대가 온 것은 세상의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라는 단순 세계 속에 살아 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라는 일본에 합방되어 역사는 부정되고 언어는 소멸되고 문화는 말살되었다.

독립운동과 그리고 미국 및 연합국의 도움으로 기적 같이 해방된 후 미·소의 양극체제 아래에서 남북은 나누어지고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6·25동란을 경험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냉전체제 속에 비교적 단순한 정치 구조 아래 살았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에 세상은 미국의 일극 체제로 다시 순환되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9·11 이후 세상은 더 이상 일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아니라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킹을 만들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싸우는 복합세계의 혼돈 속에 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복합무대의 중심에 위치하며 세계 최강국을 이루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과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게임 속에 치열한 생존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보이는 세상이 단순계에서 복합계(complex system)로 넘어간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계의 출현이다. 사이버 세계에서 한 사람은 다매체(multi-media)를 통하여, 다중적 역할을 하며, 다중적 복합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가상과 실제가 구분이 되지 않으므로, 한 사람이 천의 얼굴을 가진 다중(多重) 인격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가상 세계이므로, 취미, 취향, 라이프스타일, 생활환경, 직업과 배경이 달라도 어떤 공통성이 만들어지면 하나로 뭉칠 수 있다. 다중은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이는 세계를 바꾸어 간다. 이 복합계가 바로 다중이 활동하는 무대이다. 복합계가 무대(theater)라면 그 연출자들과 배우들이 다중이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분출을 이룬 운동들은 모두 다중의 작품이다. 예로서 반 FTA 운동으로부터 천안함 사건까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중은 거대한 군대를 이루고 사안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전쟁은 다중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중개념을 만든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현대사회를 다중에 의한 항구적 전쟁 상태로 정의하였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들은 이모저모로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내홍과 분열을, 외부적으로는 ‘안티기독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내부적으로 본다면 거품이 터지는 것이며, 외부적으로 본다면 다중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 속에 한가하게 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복잡계 속에 다중이 움직이는 시대정신을 직시하고, 세상이 바뀐 것을 깨닫고 우리의 상황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깨어서 교회를 지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교회의 본분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