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포털 사이트 창에서 6일 ‘기상캐스터’를 검색했다.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는 ‘기상캐스터 글래머’. 4번째로는 ‘기상캐스터 방송사고’ 8번째로 ‘기상캐스터 초미니’가 떴다. ‘노출’ ‘섹시’ 같은 주로 여자 연예인들의 연관검색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민망한 단어들이 기상캐스터 옆에 붙어 있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상캐스터는 무릎 선까지 내려오는 단아한 치마를 입고 깔끔한 단발머리나 올림머리를 해왔다. 20년 전 기억 속엔 남자 기상캐스터들이 훨씬 더 많았다.
과거 날씨 정보를 전하던 방송인 기상캐스터가 최근 지나치게 ‘연예인화’ 되면서 시청자들이 정보자체보다 기상캐스터의 의상이나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청자들의 요구와 시청률 경쟁이 맞물리면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케이블·종합편성채널 방송사는 물론 지상파 방송사는 기상캐스터를 대놓고 시청률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날씨방송을 봐도 날씨가 들리지 않는다”는 푸념이 나올 법 하다.
실제로 지난 4월 8일 종합편성채널 JTBC는 걸그룹 달샤벳의 전 멤버 비키(본명 강은혜·25)를 기상캐스터로 발탁했다. 비키는 다른 기상캐스터보다 몸짓이 많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얼굴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 편다. “날씨를 살펴볼까요”라는 멘트와 함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눈앞에서 돌린다.
비키가 전하는 날씨 정보는 온도, 비·눈 여부 등 기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생활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강화했다는데 황사가 온다는 예보를 하면서는 스카프를 쓰고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룩을 연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한다. 이러한 날씨 방송에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린다. “시대가 변했으니 뉴스도 변해야 한다” “생활정보도 알 수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는 의견과 “뉴스가 예능인가” “도를 넘었다”는 의견이 부딪힌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상캐스터는 지역방송국, 라디오 방송 인원까지 합쳐 300여명으로 추정된다. 날씨 방송이 인기를 끌고, 케이블TV와 종합편성채널의 날씨 뉴스가 생기면서 기상캐스터의 숫자도 쑥쑥 늘고 있다. ‘기상캐스터=방송인의 등용문’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면서 지원자들은 몰리는 상황이다. 한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 2명을 뽑는다는 공채를 냈더니 1200명이 지원했다는 얘기도 있다.
기상캐스터의 경우 추천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상캐스터 지원자들은 주로 아나운서 지원준비와 함께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며 추천을 받아 방송사와 계약하게 된다. 공개모집을 하는 경우에도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카메라에 비춰지는 이미지, 스피치 능력 등을 보는 카메라테스트가 전부다. 필기시험이나 학교 성적 등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즉 많은 지원자들이 기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 기상캐스터가 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관련 자격증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국가가 인증한 기상학회의 추천을 받지 않으면 날씨 방송을 할 수 없게 돼있다. 일본도 기상예보사 자격증이 있어야 공영방송사에서 일할 수 있고 민간 방송사도 이 자격증을 지원자격으로 내세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캐스터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기상캐스터 전문 특강이 하나 둘 생겨나는 추세다. 시장이 커지자 기상캐스터 육성만 전문으로 하는 기상아카데미도 최근 신설됐다. 이 학원의 경우 전 기상청 대변인이 학원을 열어 전문성을 기른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기상캐스터를 준비하고 있는 조용문(23·여)씨는 아나운서 준비를 위해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최근 기상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조씨는 “가장 부담되는 부분 중 하나는 (기상캐스터)지망생들이 거의 날씬하고 예뻐서 느끼는 압박”이라며 “뉴스가 예능프로그램도 아니고 주 시청 연령대도 높은 편인데 너무 외모 중심으로만 가는 추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런 식이면 전문 방송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기상캐스터로 연예인을 쓰는 마당에 아나운서도 연예인을 데려다 쓰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 현직 기상캐스터는 “기상캐스터에게는 예보문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데 요즘은 서류심사에서 미인대회 출신자만 걸러 내는 상황”이라며 “기상캐스터 자체를 연예인화 시키다보니 직업 전문성이 점차 떨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기상캐스터의 사회학] 미모 앞세운 시청률 경쟁에 ‘예보’는 안들려∼
입력 2013-06-08 04:01